‎이 다큐를 만드는 이유는...   ‎어딜 보면 되는 거지?   ‎- 여기요
‎- 알겠어   ‎그러니까
‎이 다큐를 만드는 이유는...   ‎25년간 모은 저와 카툰의
‎영상과 사진과 있기 때문입니다   ‎삶의 여정과 우리의 모든...   ‎어디 보자...   ‎"NETFLIX 제공"   ‎카툰의 타투가 없으면
‎타투가 없는 거고   ‎에스테반이 사진 안 찍어 주면
‎더 볼 것도 없어   ‎카툰을 얘기하지 않고
‎에스테반을 논할 순 없어요   ‎툰을 알면 스테브도 아는 거예요   ‎그들이 LA예요   ‎로스앤젤레스의 문화를
‎대표하는 이들이죠   ‎개척자들이에요   ‎그냥 개척자가 아니라
‎역사가들이에요   ‎이야기꾼이자 이미지 메이커이며
‎기록자들입니다   ‎LA의 타투이스트를 얘기할 때
‎미스터 카툰을 빼고 말할 순 없죠   ‎카툰 같은 아티스트는 없어요   ‎미스터 카툰의 타투는   ‎대번에 알아볼 수 있어요   ‎다들 미스터 카툰을 알아요   ‎최고의 힙합 타투 아티스트죠   ‎툰의 타투를 한다는 건
‎일종의 훈장 같은 겁니다   ‎카툰이 최고죠   ‎- 우리 친구 카툰
‎- 카툰   ‎세계적으로 유명한 카툰   ‎카툰이 가는 곳에는
‎에스테반도 있었습니다   ‎에스테반은 그 누구보다도
‎솔직한 모습을 잘 끌어냅니다   ‎갱단의 사진도 찍었고...   ‎모든 문화와
‎모든 것을 담아내는 거죠   ‎로우라이더 문화, 타투 문화
‎스키드로우에서 찍은 사진...   ‎역사의 일부를 남기는 거죠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걸
‎이 남자들이 보여 줍니다   ‎똑바로 한다면요   ‎그 모든 걸 자랑스러워 하죠   ‎많은 사람을 위한
‎길을 닦아 놨어요   ‎그들은 인정하지 않을지라도요   ‎그 두 사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용기가 중요해요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건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성공한 겁니다   ‎말에 진심을 담고
‎진심을 말하거든요   ‎이게 우리가 하는 건데
‎세상에 알리고 싶어요   ‎LA는 세계화됐어요   ‎그들이 힘을 합친 이후로
‎종횡무진하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멕시코계 가정에서 자라면
‎신앙은 필수적인 게 됩니다   ‎전 가톨릭 신자로 성장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재능이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넌 축복받았다'   ‎'신의 은총을 받았다'   ‎애들한테
‎매일 그런 얘기를 하면   ‎그 말을 믿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엄마가 저한테
‎방 좀 청소하라고 하면   ‎"미스터 카툰, 타투 아티스트"   ‎난 신의 은총을 받았으니
‎그런 건 안 할 거라고 했어요   ‎"미스터 카툰"   ‎제겐 일이 행복이에요
‎네, 일하는 게 좋아요   ‎사진과 영상 찍는 걸 좋아하죠   ‎일을 한다는 건   ‎"에스테반 오리올
‎사진작가, 영화 제작자"   ‎돈을 받는 행위를 한다는 건데   ‎그래야 생활비를 벌고
‎계속 살 수 있으니까요   ‎전 최고의 아빠나 남편은 아니지만   ‎열심히 일하는
‎사진작가라고 생각합니다   ‎꽤 좋은 친구고요   ‎제가 나쁜 놈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집중하면 많은 것이 보입니다   ‎재능을 제공하면 세계를 여행하고
‎유럽도 갈 수 있어요   ‎우린 안 가 본 곳이 없어요   ‎가족이 살 집도 살 수 있죠   ‎"문화"   ‎"툰스"   ‎예술은
‎제 몸을 달아오르게 했습니다   ‎뭔가를 보거나
‎영화 포스터를 보거나   ‎그림으로 그리고 싶은
‎어떤 것을 보게 되면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림 그리고 싶어서 말이죠
‎그림을 매일 그랬어요   ‎그러다 쉬고요   ‎그가 아주 어릴 때였어요
‎4살 때였나?   ‎그때도 콧구멍, 손톱, 귓불
‎같은 걸 그렸어요   ‎또래 아이들은
‎막대 인간을 그릴 때   ‎꽤 복잡한 것을 그렸어요   ‎"미스터 카툰의 부모님"   ‎제 첫째였는데
‎제가 훌륭한 엄마인 줄 알았어요   ‎애가 말을 너무 잘 들었거든요   ‎그의 어머니는 이러셨어요
‎'네가 최고야, 정말 훌륭해'   ‎'넌 세계 최고의 아티스트야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계속 그러면 그 말을 믿게 되죠   ‎"데이비드 최, 아티스트"   ‎어렸을 때 아버지가
‎은행에서 한 남자를 만났어요   ‎자기가 가라테 사업을
‎하고 있다고 그러더군요   ‎아버지가 집에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이제부터 가라테 도장에 가라'   ‎전 싫다고 했어요   ‎- 아빠는 가라고 하셨고요
‎- 내가 돈 내는 거니까   ‎꼭 가야 해   ‎처음 시작했을 때는
‎정말 수줍어해서   ‎말도 안 했는데
‎한 1년쯤 지나니까   ‎자신감도 넘치고
‎당당하게 걸어 다녔어요   ‎가라테를 배우면서
‎캔디 페인트를 접했습니다   ‎가라데 도장 사부님이
‎차량 도장도 하셨거든요   ‎그래서 전부 다 배웠죠
‎벽화, 캔디 페인트   ‎존중, 삶의 흐름   ‎이 모든 게 하나로 합쳐졌어요   ‎정말 대단하죠   ‎"할리우드"   ‎"스티브 오"   ‎전 에스테반 오리올이고
‎LA 출신 사진작가 겸 감독입니다   ‎샌타모니카의
‎세인트존스 병원에서 태어났죠   ‎에스테반은
‎키가 큰 촐로 남자인데   ‎절반은 이탈리아인이라는 걸
‎사람들이 잘 몰라요   ‎부모님은 제가 3살 때까지
‎같이 사셨는데   ‎그러다 이혼하셨고
‎전 엄마랑 살았습니다   ‎엄마는 최선을 다하셨어요   ‎정부의 보조금, 식품 구매권과
‎의료 지원을 받으면서 살았지만   ‎저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혼혈 아동들은
‎약간의 혼란을 겪습니다   ‎'나는 어느 쪽에 속하지?'
‎언젠가는 선택을 해야 하죠   ‎그는 라틴계를 택했어요
‎전 한참 후에야 그걸 알았죠   ‎아버지는 히피 같았어요   ‎멋진 자동차 같은 건
‎신경도 안 쓰셨죠   ‎그래서 저는 더 노력했습니다   ‎그게 제 원동력이 됐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낵 바에서 일하고, 어선도 타고   ‎슈퍼마켓에서 일하고
‎주류 판매점에서 배달도 하고   ‎잠시도 쉬지 않고
‎여러 일을 했습니다   ‎80년대에는 힙합이 모든 것의
‎중심이었습니다   ‎브레이크 댄스를 하든지   ‎랩을 하든지   ‎로킹을 하든지
‎그라피티를 해야 했죠   ‎전 브레이크 댄스가
‎너무 좋았습니다   ‎하지만 몸이 안 따라줬어요
‎그림은 잘 그렸지만요   ‎카툰은 언제나 마커나
‎스프레이 페인트 캔을   ‎갖고 다녔습니다   ‎"엔젤, 어린 시절 친구"   ‎그리고 우리가 어디를 가든
‎그림을 그렸고요   ‎저도 힙합에 빠져서
‎껄렁한 면을 갖고 있었습니다   ‎보밍도 하고, 3D도 하고
‎페이드도 했죠   ‎카툰이 오늘날의 명성을 얻기 전에   ‎"레복, 아티스트"   ‎그는 멋진 그라피티 작가였습니다   ‎전설적인 WCA 크루 출신이고   ‎실력도 정말 대단했거든요   ‎80년대 후반에 카툰을 만났는데
‎그때 예명은 '플레임'이었어요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깜짝 놀랐죠   ‎그리고 스타일도 정말 독특했어요   ‎그리고 정말 재빨랐어요
‎빈 벽을 발견하고   ‎다음 날 가 보면
‎그라피티가 완성돼 있었죠   ‎어디를 가든 그라피티를 그렸어요   ‎아주 짜릿했거든요
‎감옥에 갈 수도 있으니까요   ‎"그라피티는 범죄입니다"   ‎"당신의 아이가
‎그라피티로 벽을 더럽히나요?"   ‎"그라피티는 꿈도 꾸지 마"   ‎그라피티에 예명인
‎'플레임'을 남겼어요   ‎그래서 이름을 알리게 됐죠   ‎그에겐 특별한 점이 있었어요   ‎언젠가 녀석이 무슨 방면으로든   ‎크게 성공할 거라는 걸
‎모두 알고 있었죠   ‎큰 업적을 이룰 거라고요   ‎정말 예술 작품과도 같죠   ‎신문에 나왔을 때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몰라요   ‎저는 제 스타일을 찾고 있었어요   ‎어떤 게 저한테 와닿는지
‎찾던 중이었죠   ‎LA 트레이드 테크 대학에
‎그래픽과 글을 배우러 갔어요   ‎글에는 무게가 있습니다   ‎학교에 다닐 때
‎감옥 위치는 모두가 알았습니다   ‎감옥의 가족에게서
‎편지를 받는 애들도 있었는데   ‎편지 봉투를 보니까   ‎핀타 스타일의 콜라주로
‎가득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런 스타일의 예술과'   ‎'보밍 그라피티 스타일을
‎합치면 어떨까'   ‎그렇게 제 스타일이 탄생한 거죠   ‎전 19살이 되고
‎할리우드로 왔습니다   ‎선셋 대로는 활기찼고
‎위스키, 록시, 힙합이 떴고   ‎정말 멋진 곳이었어요   ‎저는 돈을 더 벌기 위해
‎나이트클럽에서 일을 했는데   ‎거기서 LA의 밴드를 만났어요   ‎아이스 티, 라임 신디케이트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부야 트라이브
‎하우스 오브 페인의 에버라스트와   ‎먹스를 만났습니다   ‎먹스가 절 사이프러스가로
‎데리고 갔는데   ‎거기서 비 리얼과 센을 만났습니다   ‎이게 SP 1,200인데   ‎하우스 오브 페인의 모든 음반에
‎들어간 드럼머신입니다   ‎"DJ 먹스"   ‎'점프 어라운드'의 샘플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호른 연주자가 스튜디오에 와서
‎호른을 연주했습니다   ‎제가 그걸 여기 넣었고요   ‎그리고 디튠도 했고요
‎디튠을 하면 소리가 바삭해집니다   ‎좀 퍼지기도 하고요
‎그래서 독특한 소리가 나는 거죠   ‎에스테반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클럽에서 일하고 있었어요   ‎"에버라스트"   ‎리틀 도쿄에서요
‎언제나 절 환영해 줬죠   ‎스티브 오리올을 줄여서
‎스티브 오가 됐다가   ‎스캔이 되었습니다   ‎스캔은 스캔들러스를 줄인 거고요   ‎음악을 좀 만들고 나서   ‎데뷔를 하려다가 깨달았어요   ‎먹스가 누구를 로드 매니저로
‎임명할지 모르겠다고 했거든요   ‎누구에게 책임이 막중한 자리를
‎맡길 수 있을까요?   ‎전 누구냐고 했죠   ‎스캔에게 연락을 했고...   ‎그가 투어 매니저가 됐어요   ‎그게 시작이었죠   ‎우린 거기서부터
‎세계로 뻗어나갔습니다   ‎백인들이 하우스 오브 페인이란 걸
‎처음에는 사람들이 몰랐어요   ‎사람들이 당황했어요   ‎'이 백인들은 대체 누구야?'   ‎그러다 음악이 나오면...   ‎클럽 전체가 광란에 빠지고   ‎사람들이 이성을 상실했어요   ‎거기서부터 확 뜬 거죠   ‎'샴록 앤 쉬내니간스' 뮤비에도
‎제가 나왔어요   ‎LA에 없을 때는
‎그들과 함께 투어를 했고요   ‎아빠는 사진작가였는데   ‎제가 멋진 인생을
‎사는 줄 아셨어요   ‎아빠가 저에게 준
‎제 첫 카메라입니다   ‎어떻게 사진을 찍기 시작했냐고
‎사람들이 물으면   ‎언제나 이 이야기를 해 줍니다   ‎우리가 진짜 엉망인
‎프로모션 투어를 다닐 때   ‎그는 언제나 사진을 찍었어요   ‎저는 진짜 직장을 구해야 할 때   ‎아티스트가 되기로 했습니다   ‎17살 때 처음으로 티셔츠에
‎에어브러쉬로 그림을 그렸는데   ‎이걸로 먹고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람들의 차를 티셔츠에 그리고   ‎그 위에 이름을 썼습니다   ‎일을 곧바로 시작했어요   ‎카툰의 사업이 태어난 거죠   ‎타투로 가는 길인 셈이었습니다   ‎스캔들러스가 카메라를 들었어
‎일본, 우리 방식은 이런 거야   ‎닭고기 수프 주시고   ‎그리고 버터 시금치도 주세요   ‎투어를 하면
‎스트레스가 심할 때도 있어요   ‎모든 사람의 성격을 잘 이해하고   ‎분위기를 풀어 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한 법입니다   ‎매일같이 새 모험, 새 도시
‎새 나라, 새 공연이 이어졌어요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너무 좋았죠   ‎당시는 사진작가 에스테반이 아닌
‎로드 매니저였어요   ‎놈들에게 잡혔어   ‎당시 사이프러스 힐의 음반은
‎100만 장씩 팔렸고   ‎모두의 존중을 받았습니다   ‎당시 비 리얼은
‎세계 최고의 MC였고요   ‎이 경치 좀 봐   ‎"사이프러스 힐 대기실"   ‎나 완전 괜찮아 보이네   ‎준비됐냐고 안 물어봐도 돼
‎난 언제나 준비되어 있으니까   ‎"소울 어새신"   ‎젠장, 제대로 빨았네   ‎에스테반은 먹스 덕에
‎하우스 오브 페인과 일하다가   ‎사이프러스 힐과도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센 도그, 사이프러스 힐"   ‎우리와 함께한 첫 공연은
‎1994년 우드스톡이었어요   ‎비 리얼이 무대에서
‎관중에게 뛰어들었어요   ‎그를 꺼내면서
‎저는 사진을 찍었고요   ‎완전 난리도 아니었죠   ‎에스테반은 여러 일을 했는데   ‎"비 리얼"   ‎우리의 투어 일정을 관리하면서
‎사진과 영상을 찍었습니다   ‎응, 다 내 거야   ‎달려 보자   ‎우리 크루는 아주 합이 잘 맞았고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모두 여러 역할을 맡아서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에스테반은
‎정말 많은 일을 하면서   ‎가족이자 친구 역할을 했고   ‎채워야 할 곳을 전부 채웠어요   ‎안녕, 난 스캔들러스고   ‎필요한 게 있으면 말만 해   ‎대마초도 잔뜩 있지롱   ‎내 목소리 들려?
‎망할 클리블랜드에 왔는데   ‎대자연이 우리에게 빅엿을 먹였어   ‎그렇게 에스테반이 왔고
‎사이프러스 힐의 초기 영상은   ‎전부 에스테반 오리올이
‎찍은 것들입니다   ‎스티브 오가 '나 여기 있어'라고
‎말하는 게 뇌리에 박혀 있어요   ‎아마 이런 의미 같아요   ‎'제대로 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응, 아직 가는 중이야   ‎"디바"   ‎이런 깡촌은 생전 처음이야   ‎- 어떻게 할 건데?
‎- 너보다 먼저 가야지   ‎망할 놈들   ‎뭐라고 지껄였어?   ‎- 백스테이지로 가야 해요
‎- 네가 말해   ‎- 거기로 가면 안 돼요
‎- 너무 작아요   ‎- 백스테이지로 가야 해요
‎- 통행증 있나요?   ‎이게 통행증입니다, 사이프러스 힐   ‎- 아, 사이프러스 힐
‎- 네   ‎도착했어, 엔골프   ‎비스티 보이즈, 노 다우트
‎더 푸지스, 림프 비즈킷   ‎에리카 바두 같은 밴드들과
‎투어를 했는데   ‎카메라를 갖고 있는 사람이
‎저밖에 없었어요   ‎처음에는 무덤덤했는데   ‎밴드의 연주를 듣고
‎수천 명의 사람들이   ‎광란에 빠지는 걸 보니까   ‎정신이 확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걸 다 사진으로 찍어야겠다'   ‎이게 남부 캘리포니아다, 자식아!   ‎잡지사에 제 사진들을
‎제공하기 시작했고   ‎음악 잡지들이 제 사진을 썼습니다   ‎야, 시작해
‎원, 투, 쓰리, 치키티 붐 뱅   ‎에스테반은 정말 진국이었어요
‎아시겠어요?   ‎정말 다재다능했고요   ‎그를 만났을 때
‎저는 14, 15살이었는데   ‎더 훌리건즈에서 랩을 했어요
‎래퍼였거든요   ‎"더 훌리건즈, 풋 유어 핸즈 업"   ‎저와 스코티와 둘이서요
‎스코티 칸요   ‎우린 비 리얼과 음반을 만들었고
‎그들과 함께 투어를 하면서   ‎아직 발매되지 않은 앨범을
‎홍보했어요   ‎그때 저는 16살이었는데   ‎딱 1시간 동안만 정신 차리고   ‎"스콧 칸, 더 훌리건즈"   ‎다른 때는 여자들에게 추파 던지고
‎대마초 피우고 술 마시고   ‎우상들과 어울렸습니다   ‎전 저희 또래를 대표하기 싫어요   ‎힙합을 대표하니까요   ‎그때부터 카메라를
‎갖고 놀기 시작했습니다   ‎알케미스트는
‎비트를 갖고 놀기 시작했고요   ‎- 욕해도 돼요?
‎- 네   ‎당시의 이야기를 하면서
‎욕을 안 하는 건 불가능하거든요   ‎93년도에는 소울 어새신과
‎사이프러스 힐과   ‎하우스 오브 페인이   ‎랩이 정점에 있었어요   ‎드레와 스눕도 있었지만
‎그 둘을 빼면   ‎그들이 제일 컸습니다   ‎소울 어새신과
‎우리가 최고였어요   ‎"카붐!!!"   ‎에스테반 오리올을 만난 지
‎25년도 넘었습니다   ‎정말 초현실적이었어요
‎16살짜리가 콘서트에 가서   ‎더 훌리건즈의 오프닝을 보고
‎하우스 오브 페인도 보고   ‎전성기의 사이프러스 힐도
‎봤으니까요   ‎백스테이지에 있었는데
‎콘서트가 취소될 뻔했어요   ‎에스테반이란 사람이
‎해적판 판매상을 때렸다면서요   ‎신문에서 작품을 베껴다가
‎셔츠를 만들곤 했어요   ‎공연 1시간 전에
‎후드를 뒤집어쓰고   ‎주차장 한쪽으로 걸어가서   ‎트레일러 옆에 앉아 있는데
‎난리가 난 거예요   ‎- 어이쿠
‎- 그냥 뻗더라고요   ‎이름은 거론 안 할게요   ‎말해 줘요   ‎먹스, 에스테반   ‎개자식이 입을 놀리잖아   ‎그래서 얼굴을 때려 줬지   ‎불쌍한 녀석   ‎그렇게 에스테반 오리올을
‎만났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소울 어새신 콘서트에서   ‎에스테반이 해적판 판매상을
‎때려서 말이죠   ‎스티브 오를 만났을 때
‎그는 투어 매니저였는데   ‎언제나 유쾌한 친구였어요   ‎그리고 사진작가이자 DJ였죠   ‎'템플 오브 붐'을
‎사이프러스 힐이 부릅니다!   ‎그가 사이프러스 힐의 일원으로   ‎인터뷰를 했던 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소수의 일부 때문에
‎전체를 매도할 순 없습니다   ‎논란이 계속될 것 같군요   ‎- 출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고마워요   ‎지금까지 사이프러스 힐과
‎함께했습니다   ‎첫 앨범 커버를 만들었을 때
‎모든 게 변한 것 같아요   ‎1992년에 폭동이 있었죠   ‎메시지를 전하는 시위가 아닌
‎무자비한 폭력입니다   ‎평결이 나오고
‎거리가 엉망이 됐어요   ‎그냥 터진 거죠   ‎흑인과 멕시코계는
‎서로를 보고 대화를 시작했어요   ‎가족처럼요   ‎그들은 그걸 정말 싫어했죠   ‎그날 110번 고속도로를 타고
‎할리우드로 가던 중이었는데   ‎110번 고속도로 양쪽에서
‎불길이 치솟더군요   ‎하지만 92년도에 시작된 관계는   ‎"스눕 독, 래퍼"   ‎지금까지도 견고합니다   ‎하지만 모든 게 불에 타고   ‎로드니 킹의 억울한 죽음으로   ‎'경찰 좆 까'라는 말이
‎사방에서 들릴 때   ‎제가 그린
‎키드 프로스트 앨범 커버가   ‎버진 레코드의 빌보드에
‎크게 걸려 있더군요   ‎음악계에 몸을 담근 거죠
‎기타도 안 치는 데 말입니다   ‎바로 뒤에 보이는 곳에서
‎카툰과 제가 처음 만났습니다   ‎그날 밤에   ‎제일 위층을 빌려서   ‎펜트하우스 플레이어 음반 발매
‎파티를 했어요   ‎저는 친구인 도니 찰스와
‎같이 갔고요   ‎거기 들어가자마자
‎카툰이 보였고 도니가 이랬어요   ‎'이리 와 봐, 둘이 인사해
‎얘도 멕시코계야"   ‎'둘 다 음악계에 몸을 담고 있고'   ‎'얘가 펜트하우스 플레이어
‎앨범 커버를 작업했어'   ‎'여기서 둘이 놀고 있어
‎난 한 바퀴 둘러보고 올게'   ‎걘 제게 큰 영향을 끼쳤어요
‎저와 목표가 같았거든요   ‎예술적인 면이나 우정도 그렇고요   ‎저한테 이렇게 말하더군요   ‎'엄마, 저랑 똑같은 걸 하는
‎친구를 만났어요'   ‎카툰을 처음 봤을 때가
‎94년 초반이었을 겁니다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할리우드 힐스에 있던
‎먹스의 집에서 만났어요   ‎64년식 임팔라를 타고 왔더군요   ‎완전 코미디였어요   ‎애벗과 코스텔로는
‎멈추는 법이 없었습니다   ‎걔들은 방법을 알았거든요   ‎처음에는 좀 힘들었지만   ‎더 어울릴수록 합법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 체크 댄스, 스트리퍼 체크
‎- 어디 좀 보자   ‎그 시절에는...   ‎"에릭 보보"   ‎카툰 없이는
‎에스테반도 없었습니다   ‎카툰은 소울 어새신과
‎어울렸어요, 비주얼이었죠   ‎우린 그의 재능을 봤고
‎그를 믿었습니다   ‎들어가   ‎들어가라니까   ‎진짜?   ‎카메라 꺼   ‎여기가 어디지?   ‎지금 페리에 탔어   ‎아침 8시밖에 안 됐는데 말이지   ‎피곤해 죽겠어   ‎투어를 계속 하면서   ‎색다른 관계를 가질 수 있게   ‎거듭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인생을 즐기는 거죠   ‎- 우와!
‎- 어떻게 생각해?   ‎- 좀 쩌는데?
‎- 실컷 먹는 거야   ‎카툰은 나타나자마자
‎우리 일을 다 했습니다   ‎재능이 정말 뛰어났어요   ‎무대 디자인도 하고   ‎체크, 체크   ‎제가 그린 왕이 옥좌에
‎앉아 있는 그림은   ‎큰 인형이 되었습니다   ‎진짜 갱스터 같은 거였죠   ‎타투 일은 시작도 안 했고
‎타투를 하지도 않았어요   ‎나중에 타투 가게에 가고   ‎거기서 놀기 시작하고 나서야   ‎녹색 비누와 에너지에
‎이끌리게 되었죠   ‎제 인생의 방향이 바뀐 겁니다   ‎뚱뚱한 여자는
‎사양이라는 뜻이에요   ‎아주 오래전에   ‎타투 기계를 만들었는데...   ‎파트너인 카툰을 위해서요
‎그는 이걸로 타투를 시작했어요   ‎비록 종이에 그림을 잘 그리고   ‎그라피티도 하고
‎에어브러쉬도 썼지만   ‎피부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습니다   ‎그가 타투로 옮겨간 것은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어떻게 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첫 타투를 보고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툰이 나타나고
‎판도가 바뀌었어요   ‎금속 위에 스프레이를 뿌리다가
‎타투 기계를 손에 쥐고선   ‎제2의 천성인 것처럼
‎피부를 다루었습니다   ‎초기에는 에스테반이
‎제 손님을 다 데리고 왔어요   ‎그 모든 사람들과
‎밴드들을 보고...   ‎그들의 타투를 봤는데   ‎진짜 형편없더군요   ‎콘서트에서 타투를 한 사람을 보면
‎'타투 좋아해요?'   ‎'꽤 멋지네요'   ‎'카툰한테 안 가 봤어요?
‎이건 걔가 해 준 거예요'   ‎그리고 신선한 제 타투를
‎보여 줬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탄을 했고   ‎누가 한 건지 물어보면
‎카툰의 이름을 댔죠   ‎지금 장비도 있으니까
‎당장 할 수 있다면서요   ‎그렇게 고객을 얻었어요
‎거물 고객들요   ‎정말 무슨 일이 계속 벌어졌어요   ‎아주 야심적이고 창의적이에요   ‎이 스타일이지만
‎대칭을 맞추라는 거군요   ‎같이 놀면 엄청 재밌어요   ‎가끔 성질도 부리지만요   ‎폴, 유대인 데려갈 준비 됐어   ‎제대로 해야지   ‎툰이 유럽으로
‎'앵거 매니지먼트' 투어를   ‎갔을 때였어요   ‎다들 어울려 놀았죠   ‎- 정말 대박인 투어였죠
‎- 젠장!   ‎유럽 페스티벌에 갔는데
‎모든 공연 출입증을 줬어요   ‎못 가는 곳이 없었죠   ‎우키드는 믹스테이프와
‎티켓 두 장으로   ‎창녀에게 뇌물을 준
‎혐의를 받고 있어   ‎정숙하세요, 정숙!   ‎여자를 돈 주고 샀어, 안 샀어?   ‎유흥의 대가를 지불한 거야   ‎"밥 말리"   ‎완전 프로야   ‎유럽 투어에서
‎타투를 하고 있었어요   ‎암스테르담   ‎사이프러스 힐과
‎함께 유럽에 왔는데   ‎보니까 이건 카툰의 투어야
‎50센트가 피처링하고   ‎내가 타투를 하고 싶게
‎만들어야 해   ‎- 에미넴과
‎- 너희는 돈 없어서 못 해   ‎- 엑스지빗과
‎- 망할 엑스터시   ‎- 사이프러스 힐도 함께 말이야
‎- 쉽지는 않지만 누군가는 해야지   ‎그러니 네가 해도 나쁠 게 없지?   ‎그러니까 내 타투 고객들이   ‎다들 모여서 콘서트를 하고 있어   ‎때론 백스테이지에서
‎타투를 할 때도 있었어요   ‎내일 같이 갈 거지?   ‎내일 오후 세 시, 두 시에
‎아니 한 시에 도착해   ‎예전 것도 좋았지만
‎이건 정말... 우와   ‎이제 진짜가 됐어
‎무슨 말인지 알아?   ‎애들이 지루해하는데
‎타투 머신이 백스테이지에 있고   ‎독일 어딘가에 있다면   ‎종일 거기서 노는 거죠   ‎다른 희생자를 구했네   ‎이번 투어 희생자들과
‎단체 사진이라도 찍었어야 해   ‎D12의 비자르에게도 했어요   ‎배에 타투를 한 게 기억나거든요   ‎거기서 보고 있었는데
‎배가 진짜 컸어요   ‎배가 진짜 컸는데 정말 쩔었어요   ‎카툰의 타투가 없으면
‎래퍼가 아니야   ‎살아 있는 것도 아니라고   ‎전 그저 업계의 한 개인이었는데   ‎사람들이 제 작품 때문에
‎저를 찾아왔어요   ‎재능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가득했죠   ‎"생명의 그랜드 마스터"   ‎"어둠 속으로의 추락"   ‎25년이나 지났는데
‎지금도 여전합니다   ‎그래, 종일 강해
‎무슨 말인지 알지?   ‎안뇽!   ‎어디 문 연 식당 없어요?   ‎- 2번 터미널로 가세요
‎- 네?   ‎2번 터미널요   ‎거긴 어떻게 가죠?   ‎- 어디서 꺾으래?
‎- 그린 램프   ‎뉴욕이야   ‎- 먹을래?
‎- 됐어   ‎가자   ‎카툰의 명성은
‎순식간에 높아졌어요   ‎카툰은 최고가 되었고
‎모두가 그를 찾았죠   ‎그 무렵에 거의 모두가
‎타투를 하기 시작했어요   ‎야, 피자 시키자   ‎갱 스타가 누군지 알아?   ‎바로 나와 내 친구 프리모야   ‎알겠어? DJ 프리미어   ‎난 진짜 타투만 해   ‎그리고 최고는 미스터 카툰이야   ‎진짜 대박이야   ‎완전 작품을 만들었어   ‎딱 걸렸네?   ‎담배는 뉴욕에서만 실컷 피울 거야   ‎여기서 발견했으니까   ‎도쿄에서 발견한 거 아니었어?   ‎그건 그렇지만...   ‎거기서 끊을 순 없잖아
‎지금 여기 있으니까   ‎내 친구 카툰   ‎자, 이게 우리 방식이야   ‎그리고 에스테반은...   ‎닥치라고 하면 좀 닥치라고   ‎마약과 술을 엄청나게 했어요   ‎죽어라 파티를 했죠   ‎손댈 수 있는 약은
‎전부 다 실험해 봤어요   ‎PCP, 블로우, 머쉬룸, 애시드
‎엑스터시, MDMA   ‎그런데 어느 날 아침에
‎다리에 경련이 일어났는데   ‎너무 심했어요   ‎우린 서로를 쳐다보며 이랬어요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해'   ‎그리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 그는...   ‎약을 끊었어요   ‎그렇게 다 끊고
‎수많은 중독자들을 도와줬어요   ‎정신을 차리고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국을 키웠어요
‎소울 어새신 스튜디오요   ‎눈 깜짝할 사이에...   ‎지금 얘기를...
‎지금 다 해 줄 수도 있어요   ‎처음 SA 스튜디오에 갔을 때   ‎로우라이더가 가득했고   ‎멋진 림과 벽화   ‎사탕 가게에 간
‎아이가 된 것 같았죠   ‎"미스터 카툰 타투"   ‎마치 치카노의...   ‎"조지 로페즈, 코미디언"   ‎캠프나 클럽 같았어요   ‎촐로의 다빈치 같은 친구들이었죠   ‎제가 성공 못 했다면
‎그들을 알지도 못했을 겁니다   ‎"로페즈 투나잇"   ‎네, 체크   ‎거기 들어가면서 이랬어요
‎'야, 너희 성공했네'   ‎"에미넴, 래퍼"   ‎진짜 대단했거든요   ‎다운타운에서 아주 한창이었죠   ‎스키드로우도 지척에 있고
‎거기 정말 멋졌거든요   ‎"트래비스 바커, 블링크 182"   ‎투어 박물관이라도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람들이 거길 봐야 하거든요   ‎처음 왔을 때는
‎여기도 스키드로우였어요   ‎여기서 노숙자, 약쟁이
‎정신 질환자가 살았거든요   ‎예전에는 그랬어요   ‎보여요? 좋아요   ‎미술부는 바로 저기 있었어요
‎작은 쇼룸도 있었죠   ‎이 창 뒤에 차량을
‎진열해 놓았어요   ‎저 문 안에는 카툰의
‎스키드로우 타투가 있었고요   ‎SA 스튜디오는 정말 좋았어요
‎진짜 아지트 같은 느낌이었죠   ‎너희가 많은 걸 구경시켜 줬지   ‎거친 놀이터 같았어요   ‎샬롬   ‎여기 좋은 타투가 있어   ‎그래, 쥬 유닛이야
‎무슨 말인지 알아?   ‎머리를 빡빡 민 두 남자가
‎타투를 잔뜩 했는데   ‎그들의 사무실에 가면
‎전용 나이키도 있고   ‎밴스도 있는 거예요   ‎그리고 에스테반의 사무실은
‎완전히 엉망진창이고   ‎책상에 작은 권총도 있어요   ‎오토바이에...
‎정말 최고의 스튜디오였어요   ‎그런 건 진짜 처음이었어요   ‎어찌나 질투가 나던지   ‎나가 보니 투 쇼트도 있고
‎달린도 있더군요   ‎아이스 티의 전처 맞죠?   ‎50센트도 봤고
‎드레도 봤고, 스눕도 있었고   ‎매일 그런 거물이 다녀갔어요   ‎그 여자가 들어가는 걸 보고
‎여긴가 보다 했어요   ‎무슨 말인지 알죠?   ‎에미넴도 보이더군요   ‎저기서 타투 받았어요   ‎킴 카다시안도 본 것 같아요   ‎저기서 사진도 찍었고요   ‎아직 거기 갖고 있어?   ‎"브라이언 그레이저, 영화 제작자"   ‎건물은 좀 위험해 보였어요   ‎- 야, 나타났어
‎- 진짜 위험할 거예요   ‎하지만 거기 뿌리를 내리고   ‎안전 가옥 같은 곳이 됐어요   ‎주변의 노숙자들을
‎그들이 보살펴 줬어요   ‎그래서 그 건물이 무사했던 거죠   ‎여기로 와서 벽 보고 서
‎신분증과 자전거 등록증 내놓고   ‎이게 내 신분증이고
‎이건 내 고환이니까 꺼져   ‎우린 여러 세계에
‎존재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무슨 말인지 알아요?   ‎점심 먹으러 다운타운에 가서   ‎텐트에 사는 노숙자랑
‎농담 따먹기를 하면   ‎에스테반이 그들의 사진을 찍고   ‎그러다 10번 고속도로를 타고
‎5성 호텔에 갔어요   ‎그게 일상이었어요, 아시겠어요?   ‎전 페퍼예요
‎스키드로우에서 짬밥이 제일 높죠   ‎"페퍼"   ‎난 스키드로우의 시장이에요   ‎노숙자들은 내가 하는 말을 듣지   ‎옛날 공장 건물이 비어 있었는데   ‎조커 카툰과 다른 이들이 나타나고   ‎공장이 다시 살아났다고요   ‎그리고 제가 나타났죠   ‎- 몇 살이야?
‎- 41살   ‎전 지금 50세예요   ‎몇 달 있으면 51세가 되고요   ‎전과도 있고 마약도 거래해 봤고
‎예전에는 중독도 됐어요   ‎완전히 걸레로 만들었어   ‎자꾸 대들길래 손 좀 봐 줬지   ‎이들은 절 포기하지 않았어요   ‎제가 아무리 지저분한
‎약쟁이라도 포기 안 했어요   ‎교도소를 들락날락해도   ‎출소할 때 두 팔 벌려서
‎절 환영해 줬어요   ‎평생 노숙자들을 상대했어요   ‎그들은 규칙을 싫어하죠   ‎난 일하고 싶을 때 일해   ‎자고 싶을 때 자고   ‎자고 싶은 곳에서 자   ‎권위적인 존재를 거부해요   ‎그게 마음에 안 들면
‎꺼지거나 좆 까라고 해   ‎오늘만 벌써 네 번째야
‎이건 권력 남용이라고   ‎아무 이유도 없이
‎날 네 번이나 잡다니   ‎- 내일 봐, 페퍼
‎- 알았어   ‎우리도 추락하고
‎모든 걸 다 잃을 수 있어요   ‎페퍼의 세계   ‎누구나 노숙자가 될 수 있다고요   ‎마약에 빠지면 그렇게 돼요   ‎하지만 인생은 그런 거야
‎인생은 변화하는 거라고   ‎그리고 변화가 중요한 거야   ‎계속 어디로 가라고 간섭하면   ‎인터뷰를 어떻게 하라고?   ‎이제 됐어, 카메라맨?   ‎"빅 렙키"   ‎전 빅 렙키이고 웨스트사이드
‎레벨스이자 갱스터 로코스입니다   ‎네, 갱단 멤버였었죠   ‎우리는 스키드로우에 있고
‎우린 진짜야   ‎오늘은 약 안 할 거야
‎헤로인이 혈관에 없을 거라고   ‎입안에 록도 없어   ‎스키드로우가 집이었어요   ‎거길 지옥이라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집이라고 합니다   ‎제 영역이죠   ‎렙키가 여기다가
‎우리가 버린 박스로   ‎침대 같은 걸 만들었어요   ‎예전에 여기 회의를 하러 왔는데   ‎렙키가 헤로인을 하고 있더군요
‎우리는 아이고 싶었죠   ‎렙키는 뻗어 있고
‎고객이 오고 있는데   ‎중요한 회의를 할 건데
‎우리 중독자 친구가   ‎헤로인을 너무 많이 해서
‎기절해 있었으니까요   ‎과다 복용은 안 해서
‎엉덩이에 얼음을 넣진 않았지만   ‎완전히 뻗어 있어서
‎물을 좀 뿌렸습니다   ‎정신 좀 차리라고요   ‎야   ‎정신 차려, 인마   ‎나중에 데려와   ‎난 여기서 지금...   ‎대체 무슨...   ‎회의할 거니까
‎다른 곳에 가라고 했어요   ‎지랄하고 있네   ‎네, 제 얼굴에 물을 뿌렸고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항상 그런 생각을 해요   ‎우리 여기서 쫓겨날 거야   ‎다운타운은 언제나
‎소울 어새신의 본부였어요   ‎아지트 같은 곳이었죠
‎GTA 게임도 연상되고요   ‎에스테반은 위층에 있고
‎카툰은 타투를 했어요   ‎주시하는 눈이 많았어요
‎여길 보호하려고요   ‎쉴드 같은 게 있었던 거죠   ‎하지만 사진도 찍고
‎차도 개조하는 곳에서   ‎타투도 했어요   ‎우리 애들 몸에 타투를 하게 할
‎유일한 사람은   ‎위대한 카툰뿐이에요   ‎예전에는 타투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안 좋았습니다   ‎"대니 트레조, 배우"   ‎감방에서 나오고
‎타투를 한 여자가 보여서   ‎창녀인 줄 알았거든요   ‎힙합계 사람들에게
‎타투를 해 줬는데   ‎그전까지는 힙합과
‎타투의 연관성이 깊지 않았어요   ‎힙합을 하면서 타투에 관심을...   ‎그러니까 내 말은...   ‎그러니까 카툰이 에미넴의
‎첫 타투를 해 줬고   ‎스눕의 첫 타투도 해 줬어요   ‎이거 봐요
‎제 친구 네이트 도그 닮았죠?   ‎내 사랑스러운 아내 같죠?   ‎아주 잘 묘사했어요   ‎저한테는 놀랍게도
‎카툰의 타투가 없습니다   ‎하고 싶긴 하지만
‎5만 달러나 내긴 싫거든요   ‎어림도 없죠   ‎실력은 세계 최고인데
‎가격이 너무 비싸   ‎팔에 타투를 해 주고
‎그 팔을 가져갈 거야   ‎그럴 가치가 있어요   ‎새 타투 얘기 좀 해 봐   ‎카툰은 역사상 최고의
‎타투 아티스트야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이 친구야   ‎실력도 좋고 손도 빠르고   ‎- 트럭도 제일 크지
‎- 트럭도 제일 커   ‎점점 비싸지고 있어   ‎아마 세계에서
‎제일 큰 트럭일 거야   ‎그의 고객이 누군지 알잖아   ‎트래비스와 에미넴
‎레드맨, 메소드 맨 등등   ‎저스틴 팀버레이크
‎데스티니 차일드의 비욘세   ‎보여 주지 마   ‎예약제로만 해서   ‎아무나 들어와서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머리에 타투를 할 건데   ‎제가 원하는 스타일 대로 하려면   ‎카툰이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좋은 경험이었어요   ‎노래에도 그의 이름이 들렸어요   ‎더 게임의 랩에
‎카툰의 이름이 몇 번 나왔어요   ‎"라이언 필립, 배우"   ‎전 힙합 팬이데 뮤직비디오에서
‎카툰을 몇 번 봤어요   ‎"폴 로드리게스"   ‎"슬림 셰이디"   ‎대기실에서 벽에 걸린 사진들을
‎보고 있었어요   ‎에스테반이 찍은 사진이었겠죠   ‎카툰은 50센트, 에미넴
‎닥터 드레의 타투를 다 해 줬어요   ‎엑스지빗이 타투 받는 걸
‎에스테반이 사진 찍었고   ‎그 사진이 널리 퍼졌어요   ‎아주 초창기 때부터   ‎카툰이 엑스지빗과 50센트의 등에
‎타투를 해 준 걸 알았어요   ‎50센트는 등에 타투를 했던데
‎진짜 멋지더라고   ‎"사우스 사이드 50"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더 오고 싶어 했어요   ‎예전에는 다운타운이 멀다고
‎불평을 했는데 말이죠   ‎'아, 다운타운까지 가야 해요?'   ‎'우린 라브레아에서
‎동쪽으론 안 가요'   ‎50센트의 친구 카툰은
‎여기 LA에 있어   ‎50센트 타투를 해 주고 있는데
‎회의하러 간다는 거예요   ‎인터스코프에서 지미 아이오빈과
‎계약을 한다면서요   ‎그래서 한두 시간 있다가
‎가야 했어요   ‎그래서 저와 카툰이 50센트의
‎신상 흰색 에스컬레이드에 탔어요   ‎그런데 경찰차 6대가
‎따라오는 거예요   ‎차를 멈추게 하더니   ‎저를 바닥에 내던지곤
‎수갑을 채웠어요   ‎제 뒤통수에 샷건을 갖다 대면서요   ‎아주 흥분해 있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냐면...   ‎어떤 교통 경찰관이 병원에 갔대요   ‎저랑 닮았고 머리를 밀고
‎이런 트럭을 모는   ‎남자한테 당해서 말이죠   ‎멀리서 온 손님이 있다고 하니까   ‎50센트를 보고는 보내 주더군요   ‎나도 안 했고 카툰도 안 했으니
‎제발 우릴 내버려 두라고   ‎토크쇼 나가면 할 얘기가 있겠어   ‎- 타투를 하고 있는데...
‎- 타투 아티스트가 체포됐어   ‎우리를 가만히 안 둔다니까   ‎우린 아무 데도 안 가   ‎내 친구가 포도원에 있는데
‎이걸 보게 될 거야   ‎그럼 끝나는 거지   ‎"슬래시"   ‎한참 타투 시술받다가   ‎마음 바꾸는 사람도 있어?   ‎이제 카툰의 서명만 있으면 돼   ‎안녕, 나스가 친구인
‎카툰과 놀고 있어   ‎"나스"   ‎이봐, 난 메스야   ‎방금 세계적으로 유명한
‎카툰이 타투를 해 줬어   ‎- 카툰
‎- 카툰이 최고   ‎"프로디지"   ‎"맙 딥"   ‎"폴 월"   ‎"엑스지빗"   ‎"트래비스 바커, 블링크 182"   ‎카툰은 정말 특별해요   ‎최고 중 하나죠   ‎카툰이 검은색과 회색을
‎다시 인기 있게 만들었어요   ‎카툰이랑은 아무 계획도 없이
‎그냥 시작할 수 있어요   ‎카툰만 믿고 맡길 거예요   ‎카툰과 약속을 잡고
‎코로나의 우리 집으로 왔어요   ‎방금 만난 사이였지만   ‎아주 예전부터 친했던 것 같았어요   ‎독립기념일에 애들이랑
‎온 가족이 다 모일 겁니다   ‎머리 옆의 기도하는 손이
‎카툰이 처음 해 준 타투예요   ‎제 성인 바커가 적혀 있죠   ‎마치 치료받는 것 같았어요   ‎툰과 있으면
‎타투를 하는 줄도 몰라요   ‎그다음 타투는
‎게토 블래스터였던 것 같아요   ‎제 후골의 마릴린도
‎카툰이 해 준 거고요   ‎정말 어려운 부분이죠   ‎"마크 호퍼스"   ‎저것 봐라   ‎새 음반을 녹음하던 중에
‎아들이 태어났는데   ‎아내와 아들의 이름을   ‎타투로 하고 싶다고 했더니
‎트래비스가...   ‎그럼 카툰한테 가, 걔가 최고니까   ‎우린 거실에다가
‎로드 케이스를 세팅했어요   ‎제 베이스 장비도 함께 말이죠   ‎첫 타투라서 긴장하고 있었는데   ‎시작하면서 이러더군요   ‎'야, 너 좀 대단한데'   ‎정말 진국이야   ‎제일 아픈 곳에다
‎타투를 하기로 했으니까   ‎그리고 잭의 이름을 시작했는데
‎절반쯤 완성했을 때   ‎아내 이름까지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한 타투는 이게 전부예요
‎글쎄요   ‎카툰의 타투를 받는 건
‎특권층에 속하는 거예요   ‎카툰의 타투를 가진 사람은   ‎형제가 되는 거죠   ‎전 이제 50센트, 에미넴
‎비욘세 등등과 형제가 됐어요   ‎카툰의 타투 스타일은
‎주류가 되었습니다   ‎아주 간단한 이유로요   ‎유명인에게 타투를 해 주고   ‎운동선수에게도 해 주거든요   ‎그들이 사진에 찍히면
‎타투도 드러나는데   ‎그들은 어디에나 있거든요   ‎월드 시리즈에 처음 나가서
‎운 좋게 우승도 했습니다   ‎그 순간을 평생 기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툰을 찾았죠   ‎타투 아티스트의 영웅들은
‎엄마의 집의 주방이나   ‎차고에서 일했습니다   ‎예전에는 주목받는 위치에
‎있지 않았었죠   ‎예전에도 우리가 존경하는
‎타투 아티스트가 있었지만   ‎타투가 NBA 선수의 장신구로
‎여겨지는 때는 아니었어요   ‎- 코비 브라이언트!
‎- 브라이언트가 꽂습니다!   ‎타투는 NBA에서 중요합니다
‎NBA뿐만이 아니라   ‎"코비 브라이언트"   ‎스포츠 전반에 걸쳐서요   ‎항상 이런 얘기를 해요
‎팀에 타투를 한 친구가 있는데   ‎미스터 카툰의 작품이 아닌 게   ‎너무 뻔히 보인다고 말이죠   ‎팔에 뭐라고 쓰여 있는지
‎읽을 수가 없거든요   ‎얼마나 타투를 잘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타이밍과 연줄이
‎더 중요할 때가 많습니다   ‎세상에서 실력이
‎제일 뛰어날 수도 있지만   ‎할리우드가 아닌
‎작은 마을에 살아서   ‎이름을 못 떨칠 수도 있거든요   ‎우린 중심지에 있고요   ‎중국에 갔을 때
‎한 호텔에 묵었거든요   ‎호텔 체육관에 운동하러 갔더니
‎접수대에 앉아 있던   ‎여자 직원이 이러더군요   ‎팔에 타투가 있으면
‎긴 소매를 입어야 한다는   ‎정책이 있다면서요   ‎전 어이가 없었죠   ‎그래도 죄송하지만 긴 소매를
‎입어야 한다고 하더니 이랬어요   ‎'근데 그거
‎미스터 카툰 작품이죠?'   ‎전 그걸 어떻게 아냐고 물었어요   ‎아무튼 이게 카툰의 작품이라는 걸
‎알아봤던 거예요   ‎베이징에 사는 아가씨가요   ‎LA에서 정말 먼 곳인데
‎그건 진짜 대단한 거죠   ‎폴 로젠버그를 기다리고 있어   ‎스타들의 매니저죠, 에미넴 같은   ‎폴은 그런 사람이에요   ‎에스테반의 사진 실력과   ‎카툰의 실력을 알아봤던 겁니다   ‎"폴 로젠버그"   ‎어떻게 하면 효율을
‎높일 수 있을지 알겠더라고요   ‎에미넴에게 타투를 해 주면서   ‎빅 렙키 보이지?   ‎셰이디 레코드 로고를
‎디자인하는 거였죠   ‎에미넴의 딸의 얼굴을
‎타투로 새길 때   ‎대박이라는 건 알았지만
‎얼마나 대박인 줄은 몰랐어요   ‎나중에 불러올 큰 파급 효과는   ‎전혀 기대 안 했다고요   ‎제가 할 일만 했거든요   ‎에미넴이 촬영 중이야   ‎난 친구에게 타투해 주려고
‎기다리는 중이고   ‎디트로이트에 와서 하는 말이
‎버섯으로 하자는 거예요   ‎아주 큰 버섯을
‎그려 줄 수 있다면서요   ‎그래서 팔 전체를 덮었어요   ‎몰라요, 그러고 다 지웠거든요
‎농담입니다   ‎여기 이런 걸 하고 싶어   ‎근데 제대로 해야겠지   ‎타투는 지울 수가 없으니까   ‎그럼 이런 건 어떨 것 같아?   ‎네 딸의 얼굴이라든지   ‎그리고 이 근처에다가
‎이렇게 해서   ‎- 더 풍성하게 하는 거지
‎- 그래   ‎다른 쪽과 연결되게
‎리본을 그릴 수도 있고   ‎진짜 미쳤어   ‎그중 하나가 헤일리였어요   ‎제 팔에다가 하고 싶었거든요   ‎좋아하는 래퍼가 타투를 하면
‎정말 최고죠   ‎거기 총알구멍을 뚫을 거야   ‎예전에 화장실에서   ‎카툰이 타투를 하는 걸
‎저만 촬영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정말 놀랐던 적이 있어요   ‎우리 시대 최고의
‎아티스트인데 말이죠   ‎이렇게 말했어요
‎내가 찍는 사진은   ‎우리 시대 최고의...   ‎그러니까 정말 최고의   ‎유명인, 아티스트의
‎사진을 찍는다고 말이에요   ‎그렇게 촬영을 하면서   ‎거울을 보며 미소를 지었어요
‎행복하니까요   ‎물어볼 게 있어   ‎여기서 몇 명이나...   ‎남들이 내 욕을 하는 게
‎지긋지긋해?   ‎멋진 느낌이었어요   ‎이런 생각을 했던 게 떠오르더군요   ‎엘비스 프레슬리가
‎이발을 하는 사진을...   ‎앨비스와 이발사의 사진을 보면서   ‎저 사진작가는
‎운 정말 좋다는 생각을 했던 거요   ‎아, 그것도 할래
‎그건 등에다가 해야지   ‎"파셜 매더스, 에미넴 대역"   ‎카툰은 이제부터 빅 카툰이야   ‎아주 좋은 친구예요   ‎꽤 괜찮죠   ‎에스테반은
‎구도를 잡는 능력이 뛰어나고   ‎피사체를 정말 돋보이게 합니다   ‎많은 사진작가들은
‎그걸 이해 못 해요   ‎사람을 멋지게 만드는 법을 몰라요   ‎조지 로페즈!   ‎스타의 거리에 입성했을 때   ‎에스테반이 와서
‎멋진 사진을 찍어 줬습니다   ‎팬들과 수천 명의 사람들에
‎둘러싸여서...   ‎수만 명이었을지도 모르죠   ‎제가 정장을 입고서   ‎깃발을 흔들고 할리우드 대로의   ‎다른 라티노들과 사진을 찍은 건   ‎정말 좋았어요   ‎그래서 힙합에 관련한 일을
‎많이 얻는 거예요   ‎힙합을 알거든요   ‎힙합과 성장했고요   ‎그러니까 내부의 사람이   ‎사진을 찍는 게 좋은 거잖아요   ‎'이고 트리핑'의 커버를 찍을 때
‎에스테반과   ‎예전 고등학교로 갔어요
‎폴리 고등학교요   ‎제가 고등학생 때 몰던
‎B210 옆에서   ‎레터맨 재킷을 입으니까   ‎고등학생이 된 것 같더라고요
‎진짜 쩔었죠   ‎하지만 제가 원하는 건
‎그만이 찍을 수 있었어요   ‎저한테 돈이 없던 시절요   ‎걔는 이해했어요   ‎스눕 도기 독
‎스눕 도기 디즐피즐을 찍습니다   ‎에스테반이 커버 사진을 찍으면
‎카툰이 삽화를 담당했어요   ‎"블링크 182"   ‎어떤 사람들은
‎혼자서 모든 걸 하려고 해요   ‎우린 각자가 할 일을 했죠   ‎그가 사진을 찍고
‎저는 로고와 컨셉을 그렸어요   ‎"소울 어새신"   ‎"스컬 앤 본즈"   ‎"레스 그란데스 엑시토스"   ‎"스톤드 레이더스"   ‎"켈리스, 저크 립스"   ‎"이지 이, 임팩트 오브 어 레전드"   ‎"트랜스플랜츠, 헌티드 시티"   ‎"에버라스트
‎화이트 트래쉬 뷰티풀"   ‎"엑스지빗"   ‎사진을 400장도
‎넘게 찍는 걸 봤는데   ‎걔는 그냥 밖에 나가요   ‎'벽 등지고 서' 찰칵   ‎그러면 앨범 커버나   ‎잡지 커버 사진이 나오는 거예요   ‎감독의 지시를 받는 것 같아요   ‎전 감독이 원하는 걸
‎확실하게 말하는 게 좋아요   ‎이렇게 해 달라고 하면
‎저도 좋다고 하죠   ‎그쪽의 역할은 감독이고
‎제 역할은 연기니까요   ‎전 로우라이더, 갱스터와 지냈고   ‎힙합과 가까이 지냈는데
‎그래서 여자가 많았어요   ‎LA 문화죠   ‎에스테반의 화보집을 보면
‎감탄이 나와요   ‎"웨스트 코스트"   ‎아빠 작품이 정말
‎감동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앤절라 오리올, 에스테반의 딸"   ‎여자들 사진을 정말 예쁘고
‎완벽하게 찍었거든요   ‎많은 예술이 감방에 갇혀서
‎여자에 대해 상상하는   ‎남자들로부터 나옵니다   ‎전 예전부터 그런 걸
‎여성에 대한...   ‎찬사로 봤습니다   ‎그들은 옷을 다 벗고 있거나
‎상의를 안 입고 있을 수도 있죠   ‎저는 예술가로서
‎언제나 아름다움을 추구하지만   ‎하지만 누구를 찍거나   ‎어디서 찍거나   ‎언제 찍을지를 알면
‎현실이라는 게 실감이 되죠   ‎LA 문화를 안 찍었다면
‎블링크 182와 투어를 했을 거야   ‎로드 매니저는 아니었겠지만   ‎이라크와 유럽을 투어할 무렵에는   ‎친구들이 있어야 투어가
‎더 재미있었어요   ‎에스테반과 함께 있는 건
‎정말 즐거웠죠   ‎지금 파리는 정말 개같이 추워   ‎에스테반이 함께했던
‎유럽 투어는...   ‎블링크의 역사상 굉장히
‎힘든 투어였어요, 투어 내내...   ‎다퉜거든요   ‎좀 내버려 둬, 피곤해 죽겠네!   ‎어땠어?   ‎- 진짜 쩔었어
‎- 재밌지?   ‎밴드가 처음 해체하기 전에 했던
‎마지막 공연 때   ‎마지막 음을 연주하고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게 마지막 쇼겠구나
‎뭔가가 끝나는 기분이야'   ‎그런데 에스테반이
‎무대에 올라와서   ‎우리 셋 사진을
‎찍고 싶다는 거예요   ‎그때 찍은 사진이
‎그레이트스트 힛츠 앨범의   ‎커버 사진이 되었습니다   ‎상황 속으로 직접 뛰어들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생생하게 기록할 수 있는
‎에스테반의 기풍 덕분이죠   ‎미국과 동맹국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에스테반은 우리가 중동에 가서
‎위문 공연을 했을 때도   ‎우리랑 함께 있었습니다   ‎이라크에 갔을 때
‎다들 긴장하고 있었어요   ‎막 전쟁이 터졌었거든요   ‎뭘 기대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그냥 가는 거지   ‎모험을 즐기는 거야, 멋지잖아   ‎무서웠어요   ‎날씨는 덥고 먼지도 많았고   ‎마치 대엿새 사이에   ‎전혀 다른 세상으로
‎온 것 같았어요   ‎영화 같아   ‎핵잠수함에 타서
‎어뢰 발사관에도 들어갔어요   ‎짜릿한 경험이었어요
‎무섭기도 했고요   ‎세상 보는 시각이 달라졌어요   ‎- 트래비스, 역할이 뭐죠?
‎- 드러머예요   ‎- 그렇군요, 안녕하세요
‎- 어뢰 버튼 누르지 마   ‎- 어뢰 발사
‎- 발사해 본 적 있어요?   ‎- 네
‎- 멋지군요   ‎우린 이라크 국경의
‎해병 전진 기지에 있었습니다   ‎블링크 182가 왔습니다   ‎- 시동 걸지 마세요
‎- 걱정 마세요   ‎상황이 좀 과열됐나 봐요   ‎그래서 우린 수송기를 타고   ‎항공모함을 떠나야 했습니다   ‎하지만 에스테반이 거기서
‎사진을 찍어서 정말 좋았어요   ‎많은 사진작가들이
‎디지털로 넘어가는데   ‎에스테반은 필름과
‎필름 현상을 고수했습니다   ‎필름의 거친 질감 때문에   ‎특별한 순간을
‎기록한 게 되는 거죠   ‎그리고 에스테반은
‎감독의 역할도 하게 됐습니다   ‎멋진 뮤직비디오를
‎만들기 시작했죠   ‎"알케미스트 피처링 니나 스카이
‎홀드 유 다운"   ‎에스테반이 우리가 처음 찍은
‎D12 뮤직비디오를 찍었습니다   ‎정말 거칠고 더럽게
‎보이려고 했는데   ‎에스테반이 완벽하게 해냈죠   ‎드레스덴 하우스의
‎외부를 찍은 건 알지만   ‎내부도 찍었던 것 같아요   ‎네, 화장실에서 찍었죠   ‎그렇게 입는 건
‎솔직히 좀 별로였어요   ‎리처드 시몬스처럼요   ‎하지만 당시 저는
‎뭐든지 다 했습니다   ‎사이프러스 뮤직비디오도
‎몇 개 감독했어요   ‎"사이프러스 힐, 닥터 그린섬"   ‎"그레이티스트 힛츠 프롬 더 봉
‎감독, 에스테반 오리올"   ‎우린 생각이 같았어요
‎같은 동네에서 자랐으니까요   ‎그래서 에스테반은
‎우리가 어떤 걸 원하고   ‎어떤 뮤직비디오를 원하는지
‎쉽게 알 수 있었던 거죠   ‎그러다 멕시코 시티에 갔을 때   ‎수천 명의 아이들이
‎우리를 따라다녔어요   ‎그리고 완벽한 장소에서
‎에스테반이 그 모든 걸   ‎다 촬영했고요   ‎그는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법과
‎뭐가 진솔한 건지를 알았어요   ‎마음에 드네   ‎내가 말할 테니까
‎조명 계속 비추고 있어   ‎내가 뒤돌아서면...   ‎이 뮤직비디오는 감독인
‎에스테반 오리올의 아이디어였어요   ‎그는 모두를 놀라게 한
‎뮤직비디오를 찍었습니다   ‎저도 진짜 놀랐었고요   ‎"블링크 182, 다운"   ‎에스테반이 우리 뮤직비디오를
‎감독했던 건   ‎굉장히 쿨한 면이 있었고   ‎시대를 앞서갔던 것 같아요   ‎정말 대단했어요   ‎딱 그의 스타일이었죠   ‎'다운' 뮤직비디오는 재미있었어요   ‎그때 처음 트릭스를 만났고요   ‎처음으로 마크와 톰을
‎소개했던 때였을 겁니다   ‎좀 긴장했을 거예요   ‎블링크 182 뮤직비디오에
‎절 경찰로 출연시켰어요   ‎전 진솔함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다른 목소리를 필요로 하는
‎문화의 좋은 예였죠   ‎저는 경찰로 분하고
‎한 남자를 추격했는데   ‎헬기도 날아다니고
‎LA 배신에서 찍었습니다   ‎진짜 LA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것 같았어요   ‎하지만 재미있었어요
‎뮤직비디오는 진짜 멋졌고   ‎여태 우리가 작업했던 것과
‎다른 에너지를 갖고 있었어요   ‎에스테반이 정말 멋진 걸 만들었죠   ‎준비됐어?   ‎촬영 준비하자고   ‎의자에 앉을 건가요?   ‎내가 감독해도 돼?   ‎- 네
‎- 따라오지 마   ‎그러면 카메라에 잡히니까   ‎다큐멘터리를 만들 거야   ‎6번가 다리에 대해서
‎이야기할 거라고   ‎- 준비됐어?
‎- 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6번가 다리라고 불렸던 곳입니다   ‎이것들이 보이죠?   ‎다리에 아치가 두 개 있었는데
‎지금은 저렇게 됐어요   ‎20년 동안이나   ‎이 거리와 다리를
‎사진으로 찍었습니다   ‎지금 재개발 중인데
‎푸들 파크를 만든다네요   ‎카푸치노 바, 주스 바
‎동네가 다 변하고 있어요   ‎이 다리를 통해서
‎LA 강으로 갔는데   ‎여기가 우리의 놀이터였습니다   ‎여기서 좋은 사진을 많이 찍었고요   ‎길에서 치워   ‎많은 여자, 갱스터
‎로우라이더를 찍었습니다   ‎주변에 많이 있었으니까요   ‎캘리포니아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야자수와 하얀 울타리에
‎속지 마세요   ‎창문에는 철창이 달려 있고   ‎살인 사건이 엄청나게
‎많이 일어난다고요   ‎한 소녀를 촬영 중이었는데
‎갱단 멤버가 있었거든요   ‎갑자기 LA 사인을 날리더군요   ‎LA 베이비   ‎그래서 사진을 두 장 찍었습니다   ‎그가 최초였어요   ‎많은 사진작가들이
‎그런 손가락 언어를   ‎잘 몰랐거든요   ‎웨스트 코스트나 LA 사인이나   ‎그런 걸 날려도 말이죠   ‎많은 사람들이
‎그 사진을 쓰기 싫어했어요   ‎너무 갱단과 밀접하다면서요   ‎당시에는 누가 그러는 게
‎마음에 안 든다고   ‎때리거나 총을 쏘거나
‎칼로 찌르기도 했어요   ‎그런 LA 사인을 하는 건   ‎우리가 예전에 하던 거였어요   ‎그 사진이 시초가 되었어요   ‎이젠 세계적인 것이 되었죠
‎다른 나라의 아이들이   ‎그 사인을 만들고
‎사진을 찍어서 보내곤 합니다   ‎정말 멋지지 않나요?   ‎그 LA 손 사진!   ‎- 역시 에스테반이죠
‎- 정말 많은 곳에서 베꼈어요   ‎- 진짜 많이요
‎- 엄청 도둑맞았죠   ‎많은 사람들이 훔치려고 했어요   ‎그 사인을 보면
‎해적판이라는 걸 알아요   ‎스타벅스도 마찬가지고요   ‎H&M도 그런 이미지를 훔칩니다   ‎티셔츠에 있어요   ‎악명 높은 LA 심벌요   ‎모두가 알고 그들의 엄마도
‎그 사인을 만들어요   ‎시장도 날리고요   ‎아무리 모방해도
‎원조가 누군지는 다 압니다   ‎전 사람들에게
‎언제나 뿌리를 되돌아보고   ‎앞서 갔던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라고 조언합니다   ‎정말 상징적인 사진이에요   ‎치카노의 예술에는 폭력이 있고   ‎빈곤과   ‎알코올 중독이   ‎있습니다   ‎제가 에스테반을 만났을 때
‎중독의 늪에서 허우적거렸습니다   ‎모텔에서 그에게 전화를 해서
‎괜찮은 게 있다고 했죠   ‎영상을 찍고 싶어하는데   ‎여기가 괜찮은 것 같으니
‎와서 좀 보라고 하면서요   ‎속에 온갖 약이 있었어요
‎전 차별 안 하거든요   ‎그냥 약을 잔뜩 했어요   ‎다들 가끔 그러잖아요   ‎도넛을 잔뜩 먹는 사람도 있고
‎헤로인을 잔뜩 하는 사람도 있죠   ‎이번에 새로 구한 약이야   ‎개당 5달러씩이고   ‎진짜 좋아, 두말할 것도 없어   ‎난 이 약에 취하는 게 좋아
‎느낌이 정말 좋거든   ‎제대로 안 하면 속이 엉망이 돼   ‎이게 이제는 손도 안 대는   ‎헤로인, 주사기, 크랙 파이프를   ‎찍은 사진인데   ‎왜 손톱깎이가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그걸 누가 알겠어요?   ‎에스테반이 랩으로 절 데려가서   ‎이런 사진을 꺼내면
‎저는 정말 놀랐어요   ‎'이게 정말이야?'   ‎꼭 에티오피아
‎실험실 원숭이 같네요   ‎제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모르겠어요   ‎어떤 이유에서든
‎신께서 제 목숨을 거두지 않으셨죠   ‎가끔은 진짜를 팔기도 해   ‎이땐 상태가 좀 안 좋았어요   ‎입안에 있는 건 헤로인이고요   ‎이건 다 가짜야, 가짜라고   ‎전부 가짜야   ‎아무튼 꽤 괜찮게 팔리고 있어   ‎거리에서 약을 사는 건 불법이니까   ‎불법이라서 못 팔아
‎여긴 마약이 없다고, 알겠어?   ‎다 속임수라고   ‎길고 짧은 것은 재 봐야 압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진짜를 알고 싶거나
‎거리 문화와 삶을 알려면   ‎에스테반의 화보집을 보세요   ‎그리고 결국
‎이 사진으로 귀결되었죠   ‎2003년 7월 9일 아니면
‎8일에 찍은 사진입니다   ‎이코노 로지 호텔 앞에서
‎총에 맞았거든요   ‎지금 카메라만큼의 거리에서
‎6발을 쐈습니다   ‎5발을 맞았고 저는 보험도 없어서   ‎5일 만에 퇴원했다가
‎폐렴에 걸려서   ‎거의 죽을 뻔했고 다시 입원하고   ‎30일을 더 입원해야 했습니다   ‎카르마라는 게 말이죠
‎전 에스테반의 부탁을 들어주고   ‎일을 해야 했거든요   ‎어떻게 됐는지 봤죠?   ‎90년대는 폭력적이었습니다   ‎갱단 폭력이 절정에 달했고   ‎안 좋아하는 사람들을
‎적으로 규정하고   ‎바로 처단했습니다   ‎총알 소리가 들렸어요   ‎여기서 멈추려고 했지만
‎너무 빨라서   ‎여기 멈췄던 거야   ‎그러더니 날 부르더라고   ‎난 재빨리 몸을 숙였지   ‎왜 널 쐈던 것 같아?   ‎여긴 흑인 동네잖아   ‎히스패닉 갱단이랑
‎충돌이 있었나 봐   ‎근데 내 얼굴을 보라고   ‎여기 좀 봐요   ‎"컨버스 올스타"   ‎이것 좀 봐   ‎자, 웨스트로스   ‎아파야 성숙하는 법   ‎가끔 코카인도 하고   ‎아파하고, 코카인 하고   ‎훔치고, 팔고, 친구들이랑 놀고   ‎전 멕시코계 미국인이라
‎독수리를 새겼어요   ‎미국 태생이지만 멕시코계거든요   ‎제 별명은 '스피디'인데
‎친구가 지어 준 겁니다   ‎거기선 감방이 타투 가게예요   ‎수프랑 커피 몇 상자면
‎타투를 할 수가 있죠   ‎거기서 가격은 그렇거든요   ‎요즘은 멋져 보이려고
‎타투를 하지만   ‎예전에는 타투를 하려면
‎자격이 필요했어요   ‎"발다치, 래퍼"   ‎아무 이유 없이 한 게 아니라고요   ‎제 타투는 전부 감옥에서 했습니다
‎바늘 하나로요   ‎가게에서는 한 적 없습니다   ‎"조니, 음악 제작자"   ‎오래된 검은색과
‎회색의 느낌이 나죠   ‎어떤 사람들의 타투는   ‎누군가가 죽어서 한 겁니다   ‎누굴 죽여서가 아니라요   ‎그런 얘기는
‎카메라 앞에서는 못 하죠   ‎팔 전체를 타투로 덮으면
‎일상으로 못 돌아가   ‎하지만 조금씩
‎그런 사업가들이 늘어나   ‎"언더그라운드 프로덕션"   ‎앞으로 10, 20년 동안   ‎타투를 잔뜩 한 사업가들이
‎늘어날 거야   ‎세상이 변할 거라고   ‎요샌 타투가 유행이라서
‎평범한 엄마들도 해요   ‎예전에는 타투 때문에
‎무시를 당했는데 말이죠   ‎우린 사회의 외면을 받아서
‎타투를 했습니다   ‎사회가 우리를 거부했거든요   ‎그런데 이젠 용인되어서
‎타투를 한다고요?   ‎그러니 이제 전부
‎지워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우린 인생의 어두운 면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빈민가에는
‎경찰 헬기가 날아다니고   ‎노숙자와 약쟁이들   ‎저런 문화를
‎보고 감상하는 거라고요   ‎손은 어쩌다 그랬어?   ‎관절염 있어?   ‎"레지나, 지역 주민"   ‎- 아니, 전 남친이 부쉈어
‎- 그랬군   ‎그러니까 여기로 나가서
‎이쪽으로 틀고   ‎- 응
‎- 끝까지 쭉 가면   ‎작은 골목이 있어   ‎- 가서 볼게
‎- 안녕, 고마워   ‎LA의 위험한 동네의 거리에 가면   ‎아드레날린이 솟는 게 느껴져요   ‎언제라도 일이 터질 수 있는
‎공간에 가면   ‎몸을 조심해야 하죠   ‎뒤를 조심해야 한다고요   ‎아무 생각 없이 돌아다니면...   ‎바보처럼 당할 수도 있으니까요   ‎놈들은 먹잇감을 노리는 거야   ‎바로 여기야, 알겠지?   ‎총이 꼭 있어야 해   ‎우리가 알던 많은 사람이 죽었어요   ‎카툰이 죽으면 어떻게 될지
‎상상도 안 되네요   ‎예전에 유언장을 쓴 적이 있는데   ‎유언장이 서로 교차됐어요   ‎서로의 가족을 돌봐 주기로 했죠   ‎이 작은 상자에
‎뭐가 있는지 보자고   ‎내 친구 모노인데 죽었어   ‎이 친구 덕분에 아내를
‎만날 수 있었어   ‎- 그래요?
‎- 카툰도 얘 덕분에 결혼했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진은
‎바로 이 사진이야   ‎이름은 차토였어   ‎편히 잠들길, 얘도 죽었고   ‎트릭스도 총에 맞았어   ‎누군가와 싸우다가 살해당했지   ‎편히 잠들길   ‎애도 총에 맞았어
‎이름이 네네였는데   ‎아마 33발이나 맞았을 거야   ‎- 어떻게 된 거죠?
‎- 죽었어   ‎이들은 원하는 인생을 살았고   ‎좋아하는 걸 하다가
‎죽었다고 생각해   ‎얘들은 갱스터였고
‎갱스터 짓을 하다가 죽은 거지   ‎그러니까 갱스터들은
‎다른 일보다도...   ‎그래, 안 그랬으면
‎갱스터가 안 됐겠지   ‎"우리도 에릭 라이트를 사랑했지만
‎신께서 에릭을 더 사랑하셨다"   ‎그 폭력, 가난, 광기는...   ‎아름다운 음악, 타투와
‎벽화를 만들어냈습니다   ‎핀스트라이프와 금박도요   ‎평생 감방에 갇혀있게 될 놈들이   ‎콘크리트 틈새에서
‎예술이 피어나게 도왔습니다   ‎이젠 치카노의 자긍심에
‎집중할 수 있는   ‎새로운 아티스트들이 나오고 있죠   ‎치카노가 된다는 건
‎뿌리를 찾는다는 거예요   ‎- 제일 중요한 건 가족이야
‎- 가족이 제일 중요하지   ‎치카노의 정수에 대해서
‎듣긴 어렵지만   ‎로우라이더를 보면 알 수 있어요   ‎우리는 차를 이렇게 만들어   ‎버려진 차를 주워다가
‎반짝반짝 빛나게 만들지   ‎페인트 위에
‎치카노의 정수를 부어다가   ‎사랑으로 뒤덮는 걸
‎보는 것 같은 기분이죠   ‎차를 버린 사람들이 후회할 거야   ‎멋지게 수리된 걸 보면 말이지   ‎로우라이더는
‎물건이 아닌 인생이에요   ‎"에바 롱고리아, 배우"   ‎미국의 훌륭한 문화를
‎선보이는 거죠   ‎"제이슨 브룸, 영화 제작자"   ‎엄청난 부자인 동시에   ‎문화를 잘 이해하고   ‎찬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문화는 일본, 유럽
‎남미로 뻗어나갔습니다   ‎그러니까 전 세계에 소개한 거예요   ‎"셰퍼드 페어리, 아티스트"   ‎이스트 LA의 미적 감각을 말이죠   ‎예전에 일본에 가면 일본 애들이   ‎촐로처럼 입고 있더군요   ‎세세한 디테일을 살려서요   ‎안경을 쓰고 모든 걸 다 갖추고   ‎진짜 치카노처럼 보여요
‎입을 열기 전까지는요   ‎아시아 문화는 이스트 LA와
‎로우라이딩에 빠져들었어요   ‎로우라이더 문화는
‎전 세계로 퍼졌습니다   ‎카툰과 에스테반이
‎치카노 문화로 한 것들이   ‎일본의 서브 컬처에 스며들고
‎인기를 얻었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바비 헌드레즈"   ‎더욱 멋진 것으로
‎여겨지게 됐습니다   ‎이 두 사람이   ‎선구자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윌머 발더라마, 배우"   ‎생각합니다   ‎우린 모타운 스타일의
‎오래된 음악을 들어요   ‎웨스트 코스트의 날씨 덕분에
‎1년 내내 티셔츠를 입고요   ‎우리가 흰색 티셔츠와
‎카키스와 디키스를 만들었어요   ‎그런 스타일 말이죠   ‎웨스트 코스트에선
‎코르테스 신발을 신고 자랍니다   ‎이게 웨스트 코스트의 골자예요   ‎80년대에는
‎갱스터의 신발이었지만요   ‎그런 신발을 신고 있으면
‎어디서 왔는지 물었어요   ‎저는 왜 저만의 나이키가 필요한지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그림을 그려야 했죠   ‎코르테스에 경의를 표하고
‎NWA 시대에 경의를 표해야 했어요   ‎그렇게 하고 나니까   ‎정말 너무 멋진 거예요   ‎제가 신고 자란 신발을
‎디자인하는 거니까요   ‎마치 맥도날드에서 전화가 와서   ‎저만의 시그니처 빅맥을
‎만들자는 것과 같은 거죠   ‎나이키가 미스터 카툰 신발을
‎만든다고요?   ‎걔들이 신발을 준다고?   ‎디자인까지 맡기고?   ‎말도 안 되죠   ‎자신만의 나이키 신발을 갖는
‎아티스트는 흔치 않습니다   ‎아주 당당하게
‎비즈니스 미팅에 들어갔습니다   ‎마치 제가...   ‎보스인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고객을 설득하는 겁니다   ‎제가 유행을 잘 안다고 말이에요   ‎정말 너무 부럽네요   ‎제가 하는 것에도
‎같은 철학을 적용할 수 있어요   ‎'내 친구가 했으니
‎나도 할 수 있어!'   ‎미스터 카툰은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고 있어요   ‎LA 에디션도 했는데   ‎나이키 로고가
‎LA를 가로지르는 모양이었어요   ‎다음에 한 건 아즈텍이었고요   ‎말도 안 되는 거죠
‎코르테스 위에 아즈텍이라니   ‎스페인 사람들이 멕시코가 되는   ‎뉴 스페인에   ‎질병을 가져왔고 아즈텍인과
‎전쟁을 벌여서   ‎멕시코인을 만들었잖아요   ‎그래서 그 신발은...   ‎조금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단순한 디자인이 아니라요   ‎그리고 아즈텍 전사에게
‎콧수염을 달아 줬는데   ‎현대의 멕시코계를
‎의미하는 거였죠   ‎계약이 성사됐을 때
‎정말 기절할 것 같았습니다   ‎이런 큰 거래가 이뤄질 때마다
‎놀랄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균형을 맞추려고
‎봉사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청년들에게 설명하는 거죠
‎'내가 LA에서 자랐는데'   ‎'내 신발을 디자인했어
‎네 신발은 어떨 것 같아?'   ‎애들한테 물었더니
‎다들 부끄러워하더군요   ‎"미셸 로드리게스, 배우"   ‎카툰이 애들한테 모범이 되는 게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애들에게 예술의 희망을
‎주는 거잖아요   ‎제 목표는 아이들이 생각하게
‎만드는 거였습니다   ‎'저 아저씨도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겠는데?'   ‎"마셰티, 영화 시사회"   ‎네?   ‎마셰티 시사회 날이에요   ‎아주 멋졌어요
‎로우라이더도 많이 왔고요   ‎큰 할리우드 이벤트를 보면
‎이런 생각을 했거든요   ‎'우리도 힘을 합치면 할 수 있어'   ‎충분한 예산이 있었고
‎그런 이벤트를 할 수 있는   ‎힘도 있었는데 아주 멋지게 해냈죠   ‎정말 아름다웠어요   ‎누군가가 자신들을 대표한다고
‎거리의 사람들도 기뻐했어요   ‎역사적인 순간이야   ‎우린 우리의 문화를
‎끌어올리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날 우리의 존재를
‎못 느끼기란 힘들었을 겁니다   ‎다 모였으니까요   ‎치카노의 예술을
‎새로운 곳에 선보이는 거예요   ‎외쳐, SA 스튜디오
‎GTA 아주 재밌겠네요   ‎GTA의 대성공은   ‎"클리프튼 콜린스 주니어, 배우"   ‎스테브와 툰 덕분입니다   ‎그들이 세자르 비알판도죠   ‎우리가 타투, 그라피티
‎벽화, 주류 판매점을 디자인했고   ‎과달루페의 성모도 했습니다   ‎에스테반이 그것들을
‎다시 새로 만들었죠   ‎그러니까 아주 밑바닥의   ‎밑바닥에서...
‎거의 감옥 레벨에서 출발하고   ‎거기서 살아남은 다음에
‎위로 올라와서   ‎예술의 형태를 완성한 겁니다   ‎좋은 시절이었어요
‎음반 시장은 호황이었고   ‎잡지도 잘 팔렸고   ‎광고비로 10만 달러에서
‎100만 달러를 벌었죠   ‎- 그러다 디지털 시대가 됐고
‎- 다 끝냈어요   ‎인터넷으로
‎전 세계와 소통하게 됐지만   ‎많은 사람들이...   ‎2천만 명이 이런 식으로
‎음악을 듣습니다   ‎그들은 최악의 범죄자가
‎냅스터라는 사이트라고 합니다   ‎그때 SA 스튜디오는   ‎이발소처럼 됐어요   ‎사람들이 일을 마치고 와서
‎시간을 때우는 곳이었죠   ‎제게 SA 스튜디오는 그랬어요
‎어른이들이 노는 곳이었죠   ‎'안녕, 친구, 뭐하는 거야?'   ‎'어떻게 지냈어?'   ‎의사한테 가는 것과 같죠   ‎가서 이러는 거예요
‎'안녕, 바보야'   ‎'무슨 수술이라도 하는 거야?'   ‎아이스크림 트럭 작업 중이야   ‎새벽 5시, 6시까지 작업할 것 같아   ‎아마 위층에서 기절하겠지   ‎사실 좀 부담스러워요   ‎저는 일할 때
‎주변에 사람이 없어도 되거든요   ‎변하고 있어요   ‎인생은 변화하는 거니까요   ‎- 잠시 반등하다가...
‎- 911 이후로 최악입니다   ‎주가가 급락했습니다   ‎- 53만3천의...
‎- 260만 명이...   ‎2008년에 공황이 왔고   ‎미국은 무너졌습니다   ‎경제가 악순환을 반복합니다   ‎사람들은 직장을 잃고   ‎융자금을 감당하지 못하고...   ‎잡지사도 망하고
‎음반 레이블도 망하고   ‎오바마 대통령에게
‎경기 부양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모든 예산이 사라졌어요   ‎11조3천억 달러   ‎주택 시장을 안정시키고   ‎책임감 있는 집주인이
‎집을 잃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제 작업량의 75%가 줄었습니다   ‎SA 스튜디오는 특별했습니다   ‎모든 건 변화하고
‎모든 게 순간일 뿐이죠   ‎LA 다운타운 전체가
‎너무 고급화된 것 같아요   ‎더는 쿨하지 않죠   ‎기업 친화적이 됐고요   ‎모든 게 항상 똑같다면
‎그게 뭐가 특별한 거죠?   ‎중요한 건 순간입니다
‎5년이건 10년이건 말이죠   ‎분위기가 뭔가 달라졌어요   ‎타투 전문가가 한 명 있었는데   ‎처음에는 비주류였지만   ‎요즘에는 타투가
‎없는 사람이 드물죠   ‎그리고 이쪽에는
‎사진이 엄청나게 커졌죠   ‎두 개는 공생하며
‎서로를 키웠습니다   ‎하지만 하나는
‎큰돈을 벌어들이지만   ‎다른 하나는 돈만 먹는 거예요   ‎형제들 사이의 끈끈함은...   ‎결국 사라졌습니다   ‎오늘이 마지막이야   ‎여기서 13년을 보냈지   ‎여기를 스키드로우의
‎정점이라고 불렀어   ‎스키드로우의 사람들로
‎가득했으니까   ‎SA 스튜디오는 끝이고
‎우린 다운타운을 떠나   ‎끝났어   ‎그때가 제 삶에서
‎제일 힘든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버텨냈습니다, 전 투사니까요   ‎이제 끝이야   ‎컷!   ‎"로스앤젤레스
‎보이스 앤 걸스 클럽"   ‎LA는 저의 원동력입니다   ‎모든 게 마음에 들어요   ‎좀 보세요, 정말 멋지지 않나요?   ‎저는 여기서 필름을 현상합니다   ‎꽤 멋진 컷들이 있군요   ‎13년이 지나고 이사를 했는데   ‎새로운 SA 스튜디오를 보여 드리죠   ‎제가 쓰는 부분 말이에요
‎카툰은 다른 쪽을 쓰거든요   ‎자, 여기입니다   ‎SA 스튜디오   ‎제가 겨우 들어갈 정도예요   ‎여기가 새 SA 스튜디오입니다   ‎이건 아직 처리 안 한 고지서예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진작가의 삶은 이런 것입니다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전 낙천주의자예요   ‎언제나 해결책을 찾거든요   ‎무엇에 감사한지 생각하고   ‎어떻게 할지 고민하죠   ‎SA 스튜디오를 닫고도
‎하루도 쉬지 않았습니다   ‎여기 개인 스튜디오가 있어요   ‎여긴 제 소유라서
‎쫓겨날 일도 없어요   ‎전부 제 취향에 맞춰져 있죠
‎에어브러시를 쓸 수도 있고요   ‎여기서 5년째 지내는 중인데   ‎정말 좋습니다   ‎저길 잘 보세요   ‎사랑스러운 6번가 다리가 있어요   ‎이렇게 보니까 정말 좋네요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한다니까요   ‎이 벽화는 제 친구인
‎리스키가 그린 겁니다   ‎리스크를 모르는 사람은 없죠   ‎여긴 예전에 주차장이었을 겁니다   ‎예전에는 초라했던 건물들이
‎지금은...   ‎엄청 거대하고   ‎그리고...   ‎망할 아파트 같은 것들이
‎들어와 있어요   ‎제가 희생자란 생각은 안 해요
‎정상에 있는 것 같으니까요   ‎SNS에서도 최고고
‎포토샵도 쓸 줄 알고   ‎컴퓨터도 쓸 줄 알죠   ‎다 혼자 터득했습니다   ‎그렇게 안 한 사람들은
‎감당하기가 어려울 거예요   ‎요즘 세대를 따라가려고 했어   ‎포스팅도 하고 다 해 봤거든   ‎섹시한 여자들, 유명인들
‎갱스터 같은 것들   ‎전부 다 포스팅해 봤어   ‎특정한 날의 특정한 시간에   ‎그런데 얘는 왜 팔로워가
‎100만 명이나 되고   ‎나는 11만5천밖에 안 되는지
‎모르겠더라고   ‎내가 좀 대단한 걸
‎올리려고 할 때마다 이랬어   ‎'인스타그램에 올려서
‎다들 놀라게 만들어야지'   ‎'날 싫어하는 애들이
‎다 튀어나오겠지'   ‎그렇게 포스팅을 해도...   ‎아이폰으로 강아지 사진 찍어서
‎올리는 게   ‎더 많은 좋아요를 받더라고   ‎알고리즘이고 분석이고
‎그런 것들이   ‎엄청 시간을 잡아먹고
‎감당할 수가 없었어   ‎요즘 애들 따라가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니야   ‎그래서 가끔은 이래
‎'아니, 내가 왜 이러고 있지?'   ‎그리고 내가 할 일을 하러 가   ‎계속해서...   ‎돈을 벌어야 하니까
‎고지서도 처리해야 하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도
‎우리가 창조한 걸 보는데   ‎여기 사람들은 잘 모르죠
‎눈앞에 있으니까요   ‎우린 베를린 출신인데
‎로우라이더를 몰아요   ‎"로코 빌, 여행자"   ‎옷도 LA 스타일로 입고
‎LA 음악도 들어요   ‎라티노의 삶!   ‎이 형태의 예술은
‎모두를 포용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영향을 받는데도
‎우리는 모르고 있어요   ‎제 내면은 언제나 촐로예요   ‎난 트랜스젠더고 타투도 했어요
‎타투가 정말 좋거든요   ‎- 아주 멋져요
‎- 네   ‎다 괜찮아, 친구   ‎그라피티 때문에
‎20번도 넘게 체포됐어요   ‎사람들한테 쫓기고 개한테 물리고   ‎펜스를 넘다가
‎다리가 찢어진 적도 있어요   ‎하지만 좋아해요   ‎에스테반의 사진과
‎카툰의 타투를 보면서   ‎이곳의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었죠   ‎- 사람들이 나오네요
‎- 타이밍이 완벽했어요   ‎에스테반과 카툰이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의 문화를   ‎양지로 끌어내고
‎예술로 만들었습니다   ‎이 쇼에선 우리 예술의 정신에
‎솔직하려고 했습니다   ‎반달리즘, 야망, 반항
‎거리에서의 삶   ‎더 비욘드 더 스트리트 쇼에는
‎뱅시, 바스키아도 있고   ‎무라카미, 셰퍼드 페어리와   ‎카툰의 교회도 있으며   ‎전설적인 에스테반의
‎LA 사인도 있습니다   ‎그라피티를 반달리즘으로만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물론 반달리즘이
‎아니라는 건 아니에요   ‎반달리즘이 맞으니까요   ‎반달의 예술이에요
‎변기에 이름을 새기는 거죠   ‎사람들이 그렇게 보니까요   ‎우린 애초에 거기 있을 수도 없고   ‎차를 대거나
‎사진을 찍을 수도 없어요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들에겐 학위도 없었는데
‎다 거리에서 배운 겁니다   ‎그런 스타일과 문화를
‎주류로 만든 게   ‎그들의 공이냐고요? 네   ‎"에릭 헤이즈, 아티스트"   ‎힙합 문화는 툰스와
‎에스테반에게 진 빚이 많습니다   ‎그들이 뛰어난 두각을 드러내서
‎유행을 선도했고   ‎다음 세대에까지
‎영향을 끼쳤습니다   ‎예술 전반에서 카툰과
‎에스테반의 위치는 어디일까요?   ‎꽤 높지 않을까요?   ‎그들은 공개되어 있고
‎쉽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잡지 사진을 찍고
‎스키드로우 사람들과 친하고요   ‎넌 많은 일을 해냈어   ‎그라피티 작가들과도 친하죠   ‎H&M에 대한 제 생각을
‎보여 드릴까요?   ‎뮤지션이나 유명인들과도 친합니다   ‎그들은 지금도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게 자존심이고 예술이고
‎치카노의 삶입니다   ‎현재 미국에는 인종차별과
‎외국인 혐오가 판치고 있는데   ‎직접적인 정치적인 메시지나
‎그냥 스타일만을 제시하는   ‎치카노의 예술이 전진하는 건
‎정말 멋진 일입니다   ‎이민국 요원과 단속, 인종차별   ‎우리 문화에 영향을 줄 겁니다   ‎문화는 증오보다
‎목소리가 더 커야 합니다   ‎전 계속 전진할 겁니다   ‎계속 작품을 만들고
‎문화를 반영할 겁니다   ‎와줘서 고마워요! 고맙습니다!   ‎자막: 박해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