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Witch.of.the.West.Is.Dead.2008

마녀가 쓰러졌다

 

이미 늦은 거 같다

 

엄마, 와이퍼

 

고마워

 

문득 생각났다

 

2년 전 이맘때
학교에 못 가게 된 내가

 

할머니랑 둘이 보낸
한 달 남짓한 시간이

 

서쪽의 마녀가 죽었다

 

korsubtitle

 

나 이제 학교 안 가

 

학교는 나한테
고통을 주는 곳일 뿐이야

 

알았어

 

그럼 일단 당분간 쉬자

 

중학교 입학한 지
아직 한 달도 안 됐잖아

 

그렇게 빨리
결론 내릴 거 없어

 

엄마 나가야 해

 

오늘은 6시까지
올게

 

그래

 

너무 세게 혼내도
오히려 역효과 나잖아

 

이유?

 

글쎄, 뭐랄까

 

애가 감수성이 너무 예민해

 

어쨌든 뭔가
상처받은 게 분명한데

 

옛날부터
다루기 힘든 애였어

 

살아가기 힘든 타입이지

 

일단 시골 엄마네서
푹 쉬게 하려고

 

등교 거부란 말은 들어봤지만

 

설마 우리 애가
그렇게 될 줄이야

 

그래, 당신은 어때?

 

다루기 힘든 애...

 

엄마는 혼혈인 탓인지

 

학교라는 곳에
끝내 녹아들지 못했다

 

그래도 대학까지 졸업했다

 

그에 비해 난 중학교에서...

 

할머니는 그런 나에게
분명 실망하겠지

 

건강해 보이네

 

마이

 

할머니, 오랜만이야

 

왔구나

 

하나도 안 변했네

 

이쪽으로 들어가도 돼?

 

역시 이 계절은
초록빛이 예쁘네

 

그렇지

 

맞다

 

오는 길이 넓어져서 놀랐어

 

그런가

 

몰랐어?

 

고마워

 

바람 좋다

 

애 아빠가 안부 전해달래

 

새로운 공장이
곧 가동돼서 못 온다고

 

어, 허브가 또 늘어났네

 

몇 종류나 있어?

 

글쎄

 

저거 잉글리시 라벤더지?

 

그래서 마이 말인데

 

그리 심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

 

마이가 어려서부터
여러모로 섬세했잖아

 

그래서 그런 거 같아

 

여기서 기분전환을 하면
금방 회복할 거야

 

힘들겠지만

 

다루기 힘든 애...

 

마이랑 같이
지내게 된 건 기뻐

 

난 마이 같은 아이가
태어나줘서 정말 감사해

 

난 옛날부터
할머니가 너무 좋았다

 

툭하면
"할머니 너무 좋아" 라고 했다

 

그럴 때 할머니는
항상 미소 지으며

 

이렇게 화답했다

 

아이 노우
(I know)

 

마이

 

왜?

 

샌드위치 만들자

 

뒷밭에서
양상추랑 금련화 좀 따 와

 

 

이거면 돼?

 

- 그래
- 그래

 

그거 씻어서
소쿠리에 담아줘

 

양상추는 몇 장?

 

글쎄, 서너 장쯤?

 

고마워

 

마이, 선반에서
접시 좀 꺼내줄래?

 

이거면 돼?

 

그래, 그게 주로
식사 때 쓰는 접시야

 

마이, 차에서 컵 가져와

 

컵은 있어

 

마이는
자기 컵 가지고 왔어

 

그렇구나

 

간 김에 짐도 가져오고

 

혼자?

 

차에 카트 있으니까

 

안녕하세요

 

넌 어느 집 애야!

 

여기가 할머니 집이에요

 

놀러 왔냐?

 

당분간 여기서 지내요

 

병 때문에요

 

팔자 좋네

 

뭐야

 

이상한 남자가
차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어

 

아마 겐지 씨일 거야

 

겐지 씨?

 

어머, 그 사람 돌아왔어?

 

그 사람이 누군데
어디 사는데?

 

마이, 앉는 게 어떨까

 

좋은 컵이네

 

겐지 씨는
오솔길 입구 쪽 집에 살아

 

가끔 정원 일을 부탁하지

 

개가 막 짖던 곳?

 

그래

 

역시 이혼한 거야?

 

글쎄, 지금은
혼자 사는 거 같긴 해

 

그 사람 자주 와?

 

자주는 안 와

 

그것보다
마이는 어느 방을 쓸래?

 

할아버지 방이나
엄마 방이나

 

난 엄마 방을 쓸래

 

아직 그대로야?

 

그대로지

 

그럼 좀 갔다 와볼게

 

청소를 해야겠다

 

지금 당장?

 

빨리 해야 마이한테 좋지

 

엄마는

 

마이한테 보여주기 싫은 걸
치우러 간 거야

 

마이도 남한테
보여주기 싫은 게 있지?

 

사람은

 

어른이 되려고 할 때
그런 게 점점 늘어나거든

 

너희 엄마는 저 방에서
어른이 되어갔으니까

 

그런 게 많이 있을 거야

 

할아버지 방에는
아직도 돌이 많아?

 

그래, 그대로야

 

할아버지는
진짜로 돌을 좋아했어

 

난 할아버지의
이 사진이 좋았다

 

할아버지는
중학교 과학 선생님이었다

 

그 학교에 영어 선생님으로

 

영국에서 홀로
건너온 사람이 할머니였다

 

두 사람은 얼마 후 결혼했다

 

그리고 엄마가 태어났고
내가 여기 있다

 

뭔가 되게
신기한 느낌이 든다

 

엄마...

 

- 좋은 아침
- 좋은 아침

 

엄마 아침에 일찍 갔어
뭔가 급한 일이 있다고

 

 

이렇게 많이 안 먹어

 

오늘은
뒷산에서 일할 거니까

 

뭐 하는데?

 

우선 이거 먹고
뒷산 좀 산책하고 와

 

산책...

 

엄청나다

 

탈출

 

일단 탈출이다

 

마이!

 

자, 따자!

 

마이

 

입 벌려봐

 

산의 맛이네

 

할아버지는

 

이 산딸기잼을
너무 좋아해서

 

뭐든지 발라 먹었어

 

그런데 오이에
발라서 맛보았을 때는

 

역시나 "어이쿠" 하셨지

 

오이?

 

그 후로는
녹색 채소에는 절대 안 발랐지

 

엄마도 이렇게 도와줬어?

 

아니

 

그때는 여기에
산딸기가 없었어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해부터 이렇게 늘어났지

 

마치 할아버지의 선물 같네

 

정말 그래

 

왜냐하면 그날

 

여기가
산딸기 카펫처럼 된 날이

 

내 생일이었거든

 

할아버지는 한 번도

 

내 생일을
잊은 적이 없었어

 

할머니, 기뻤겠다

 

너무 기뻐서
여기서 웅크리고 울었지

 

마이가 의외로 힘이 세구나

 

이렇게 설탕을 많이 넣으면
몸에 나쁘지 않아?

 

괜찮아, 잼은
한 번에 많이 안 먹잖아

 

그리고 아주 달아야
맛이 오래가는 법이야

 

자, 이거로 천천히 저어봐

 

마이는 정말 잘하는구나

 

마이, 할머니랑 바꾸자

 

올해는 마이가 도와줘서

 

정말로 편했어

 

내년도 그 다음에도
계속 도와주러 올게

 

둘이서 만든 잼은

 

먹어보니 새콤달콤
숲의 초목 맛이 났다

 

마이 재능이 있구나

 

이 민트에 칠한 녹색이 너무 예쁘다

 

뭐 꿰매는 거야?

 

누군가의 앞치마

 

이건 엄마 잠옷이었어

 

위는 마이의 정원 작업용

 

겉옷으로 만들어줄게

 

아래는 주방용
귀여운 앞치마

 

할머니 너무 좋아

 

아이 노우
(I know)

 

마이는 마녀 아니?

 

마녀?

 

빗자루를 타고 다니는?

 

조금 다르지만 뭐, 그래

 

TV나 만화에서는 봤지

 

마녀는 진짜로 있었어

 

우리 할머니도 마녀였지

 

할머니가 뛰어났던 건

 

예지력과 투시력이었어

 

우리 할아버지는 옛날에

 

메이지 시대에
일본에 온 적이 있었어

 

그때 할머니는
겨우 열아홉이었고

 

할아버지와 약혼 중이었지

 

어느 날 오후 할머니는

 

집에서 결혼 준비로
행주를 여러 장 만들고 있었어

 

그러다 갑자기
눈앞에 밤바다가 펼쳐졌고

 

그 속에서 홀로
헤엄치는 할아버지가 보였어

 

할머니는 무심코
"오른쪽으로!" 라고 외쳤지

 

마침 그때
배에 타고 있던 할아버지는

 

어쩌다 그만
바다에 빠져버렸어

 

배는 그대로 가버렸고

 

할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배가 떠난 쪽으로
헤엄치기 시작했지

 

얼마 후 할아버지는
더 이상 안 될 거 같아서

 

할머니의 이름을 불렀어

 

그때였지

 

갑자기 할머니의
그리운 목소리가

 

힘차게 들려온 거야
"오른쪽으로!"

 

할아버지는 망설이지 않고
오른쪽으로 헤엄쳤어

 

그리고
모래사장에 도착해 살았지

 

할아버지는
그 신기한 체험을

 

편지에 써서
할머니한테 보냈어

 

할머니는 답장으로
할아버지가 살아난 기쁨 외에

 

아무 말도 쓰지 않았지

 

왜?

 

당신을 구한 건 나라고
쓰면 좋았을 텐데

 

그런 시대였거든

 

할머니

 

혹시 그거
우리 집안 혈통인 거야?

 

정답

 

그런데

 

난 그런 능력이 없네

 

글쎄

 

그날 밤 꿈을 꿨다

 

서쪽으로!

 

할머니, 좋은 아침

 

좋은 아침, 마이

 

물 좀 잠가줘

 

마이, 이리 와봐

 

이 잎이 뭔지 아니?

 

부추

 

이런, 아깝다

 

뭔데, 할머니

 

마늘

 

마늘?

 

어디가 마늘이야?

 

마늘은
땅을 파서 캐는 거야

 

이렇게
장미 사이에 심어두면

 

장미에 벌레가 안 꼬이고
향기도 좋아지지

 

난 여기가 너무 좋다

 

어젯밤
할머니가 얘기했듯이

 

나에게도
마녀의 피가 흐르는 걸까

 

할머니, 나도 노력하면

 

초능력을 가질 수 있을까?

 

아니야, 됐어

 

노력을 많이 해야 해

 

마이의 경우는
우선 기초 훈련을 해야지

 

나 열심히 할게

 

기초 훈련은 어떻게 해?

 

스포츠를 하려면
몸을 단련해야 하잖아

 

마찬가지로
마법과 기적을 일으키려면

 

정신력이 필요해

 

정신력을 단련시키는 훈련

 

좌선?

 

그건 아직 좀 이르지

 

그럼 어떻게 단련해?

 

그러게

 

우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밥을 잘 먹고

 

자주 운동하고

 

규칙적으로 생활하기

 

너 지금 너무
단순한 일이라 실망했지?

 

하지만 그런 단순한 일이

 

마이한테
가장 어려운 일 아닐까

 

응, 어려워

 

마녀가 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의지력이야

 

스스로 결정하는 힘

 

스스로 결정한 걸
끝까지 해내는

 

마이가 원하는 건

 

가장 어려운 걸
극복하지 않으면

 

못 얻을지도 몰라

 

한번 속는 셈 쳐봐

 

한번 해보도록 할게

 

좋았어, 마이

 

그럼 스스로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전까지 시간표를 짜봐

 

그걸 종이에 써서
벽에 붙이자

 

할머니는
항상 몇 시에 일어나?

 

6시

 

절대 불가능이야...

 

7시면 몰라도

 

그러면 딱 같이
아침을 먹을 수 있겠네

 

그럼 11시에는 자야 하나

 

잠이 들까

 

마이는
항상 몇 시에 자는데?

 

2시나 3시

 

이런 식으로
시간표를 정해나갔다

 

오전에는
빨래와 청소 등 가사 운동

 

오후에는 공부나 독서

 

그리고 밤 11시에 자기

 

잘 자, 할머니

 

마이

 

난 마이의 의지력이
약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

 

난 약하다고 생각해

 

22:15 자유시간
23:00 취침

 

마이?

 

응, 들어와

 

그게 뭐야?

 

푹 잘 수 있는 부적이야

 

굿 나잇, 스위티

 

고마워

 

잘 자, 할머니

 

양파?

 

마이!

 

 

7시야

 

 

어서 옷 갈아입고
달걀을 가져오렴

 

이렇게
마녀 수행이 시작됐다

 

마녀 수행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하지만 신선하고
나름 재미있었다

 

밥이에요

 

왜 저런 남자가
내 생활에 끼어드는 거야

 

모처럼 잘하고 있었는데

 

마침 잘 왔어

 

신발 벗어봐

 

대야 안에서
제자리걸음 좀 해줘

 

시트를 빨 거야

 

마이, 계속 그렇게

 

잘한다, 잘해

 

라벤더 위에
새하얀 시트가 넓게 펼쳐졌다

 

그러자 아까의 불쾌한 일도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느낌이었다

 

할머니
이렇게 많이 뭐 하려고?

 

민트티랑
샐비어티를 만들 거야

 

밭의 약이지

 

약?

 

마이도 어딘가
마음에 드는 곳에

 

밭을 만들어도 돼

 

할머니 집 정원 안이나

 

산속에서

 

마음에 드는 장소를 골라봐

 

거기를 마이한테 줄게

 

할머니, 나 정했어
제일 마음에 드는 장소

 

벌써?

 

어때, 할머니

 

여기야

 

마이가 좋아할 만한 곳이네

 

여기는

 

옛날에 작지만

 

멋진 숲이었어

 

저기가 단으로 되어 있잖아

 

단부터 이쪽이랑 방금

 

뒷마당에서
둘이 언덕을 걸어온 길

 

거기를 할아버지가 샀어

 

그럼 이곳은
아슬아슬하게 우리 땅이야?

 

그래

 

다행이다

 

마이도 여기가 좋구나

 

그런데 여기가 밭이 되려나

 

여기는 마이의 장소로 하자

 

하지만 건드리지 않고
이대로 두는 거야

 

심는 건 그래

 

엉겅퀴나 잔대, 용담

 

여러 종류의 제비꽃

 

그런 강하면서도
고운 풀을 심자

 

할머니

 

그거 너무 좋다

 

할머니 너무 좋아

 

아이 노우
(I know)

 

할머니, 진짜 약이네

 

벌레가 도망가

 

할머니는 그 장소를
'마이의 성역'이라고 불렀다

 

이 풀에

 

'꼬마 물망초'라는
이름을 붙였다

 

날마다 물을 줘서
좀 더 튼튼해지면

 

'마이의 성역'으로
옮겨줄 거다

 

뭐야, 이거

 

이런, 망했네

 

뭐야, 손녀니?

 

안녕, 할머니 있어?

 

그래, 알겠지?

 

그럼 켄타로, 부탁한다

 

거참, 집에 가는
길이라서 다행이지

 

이게 뭔 난리야

 

할머니가
빨리 읽고 싶을 거 같아서

 

내일 배달분인데
가져와 버렸어요

 

여기 국제 우편이요

 

여동생이 보냈네

 

유능한 내 동생은
영국에서 점술사를 하고 있어

 

아마 꽤 늦은
생일 카드일 거야

 

할머니

 

저번에 집사람한테 준 거

 

그거 좋던데요

 

괜찮겠어요?

 

괜찮아요

 

오늘은
오토바이도 망가졌고

 

아들이 데리러 오니까요

 

알았어요

 

웬만한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이시라니까

 

목마른 나그네가 있으면

 

이렇게 컵 한가득
물을 내주는 배려심이 있거든

 

 

할아버지도 그랬지
조용한 분이셨지만

 

물이 아니잖아요

 

잘 마실게요

 

맛있어요

 

모과주예요

 

맛있다

 

할머니
제 얘기 좀 들어보세요

 

아, 마이랑 딱 동갑이겠다

 

우체부 아저씨는

 

아들인 켄타로도
우체부가 되고 싶어 한다고

 

기뻐하며 얘기했다

 

봄 방학 때
같이 배달을 했다고 한다

 

오토바이를
자전거로 죽어라 따라오고

 

오토바이는 수리점에서
내일 가지러 온대요

 

이 녀석이 켄타로예요

 

생긴 건 이래도 된 놈이죠?

 

내 뒤를 잇는다니까요

 

아, 그래

 

언제 다 같이
신나게 배달 한번 해요

 

아버지, 가요

 

알았어

 

어디 타볼까

 

갈게요

 

달려

 

갑니다!

 

할머니는 거듭 말했다

 

마녀가 되기 위해
필요한 건

 

매사 올바른 방향을
캐치하는 안테나와

 

무엇이든
스스로 결정하는 힘이라고

 

어려워

 

아직은 무리야

 

시간이 걸리지

 

잘 훈련된 마녀가 되면

 

보고 싶은 것이 보이고

 

듣고 싶은 것이 들린단다

 

할머니는 돼?

 

할머니 동생은 점술사잖아

 

난 그런 거는 안해

 

왜?

 

나는 날마다
작은 변화가 기대되거든

 

초목과 정원의 모습 말이야

 

그러니 변화를
미리 알 필요가 없지

 

그런데

 

나도 하나

 

언제 일어날지
알고 있는 게 있어

 

뭔데?

 

비밀

 

뭘까

 

머지않아
마이도 알게 될 거야

 

2년 후, 나도
아는 때가 오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야

 

닭이...

 

전에도 그랬어

 

들개나 족제비 짓일 거야

 

무슨 일이야!

 

마이잖아, 왜 그래

 

숲이, 숲이...

 

그래

 

할머니, 같이 자도 돼?

 

들어와

 

할머니

 

왜?

 

사람은 죽으면 어떻게 돼?

 

모르겠네
사실 죽어본 적이 없거든

 

아빠는...

 

아빠한테도 물어봤어?

 

꽤 오래전에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아빠는 죽으면

 

이제 완전히 끝이라고 했어

 

이제 아무것도 없어진대

 

만약 내가 죽어도

 

역시나

 

아침이 되면 태양이 뜨고

 

모두가 평범한 생활을
계속하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어

 

마이

 

이리 오렴

 

그래서 마이가
계속 괴로웠겠구나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할머니가
믿고 있는 얘기를 해줄게

 

 

죽는다는 건

 

영혼이 몸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거라고
할머니는 생각해

 

영혼은
몸이 없어지고 나서도

 

긴 여행을 계속해야 하지

 

그럼 영혼이 나야?

 

마이는
영혼과 몸이 하나 되어

 

마이인 거야

 

그럼 죽으면

 

이렇게 여러 생각을 하는
내 의식은 어떻게 돼?

 

난 그게 사라지는 게
제일 무서워

 

그렇지

 

흔히 배고프면
짜증 내는 사람이 있잖아

 

나다

 

그건 몸이
의식에 영향을 줘서

 

짜증 내는 거잖아

 

그 몸이 없어지는 거니까

 

죽은 후의 마이가

 

지금의 마이와
같다고는 할 수 없겠지

 

그렇다면
몸 같은 거 필요 없어

 

뭔가 고통스럽기 위해
몸이 있는 거 같아

 

그 닭도

 

몸을 가질 필요가 있었어?

 

그렇지만 마이

 

영혼은 몸이 있기에
여러 체험을 할 수 있어

 

여러 체험을 하지 않으면

 

영혼은 성장할 수 없거든

 

성장 따위 안 해도 되잖아

 

정말 그럴 수도 있어

 

하지만 그게
영혼의 본질이라 어쩔 수 없어

 

풀과 나무가
빛을 향해 뻗어가는 것처럼

 

영혼은 성장하고 싶어 해

 

게다가 몸이 있으면

 

즐거운 일도 많이 있단다

 

마이는

 

라벤더와 햇볕 냄새가 나는
이 시트에 감싸일 때

 

행복하지 않니?

 

추운 겨울에
양지에서 햇볕을 쬐고

 

더운 여름에
나무 그늘에서 바람을 쐴 때

 

행복하지 않았니?

 

철봉 거꾸로 오르기를
처음 성공했을 때는 어땠어?

 

할머니가 죽으면
마이한테 알려줄게

 

정말?

 

그런데 안 서둘러도 돼

 

응, 알아

 

그래

 

영혼이 몸에서 벗어났다는

 

증거 정도만 보여줄까?

 

마이가 무섭지 않게

 

부탁할게

 

아, 맞다

 

뒷정리는 내가 할 테니까

 

마이는 겐지 씨네 가서
이 돈을 전해주고 와

 

지금?

 

그래, 겐지 씨가
외출하기 전에 가야지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저기...

 

이거요

 

그래

 

어느 집 애냐

 

외국인네 손녀야

 

학교 땡땡이치고 놀고 있지

 

그럼 너랑
아주 닮은 꼴이네

 

할머니

 

그 집 개의 털이

 

철망에 붙어 있던
털이랑 똑같아

 

철망?

 

저번에 닭이 당했을 때
철망에 붙어 있었어

 

연갈색의...

 

족제비 털도 연갈색이야

 

아니야

 

난 분명
그 집 개의 털이라고 봐

 

그 집 개가
밤에 빠져나와서

 

우리 닭을 덮친 거야

 

하지만 네가
본 게 아니잖아

 

안 봐도 안다고

 

마이, 좀 앉아봐

 

잘 들어, 마이

 

이건 마녀 수업의
가장 중요한 레슨 중 하나야

 

마녀는 자신의 직관을
소중히 여겨야 해

 

그렇지만 그 직관에
사로잡혀서는 안 돼

 

하지만...

 

네가 생각하는 게
진실이라고 말하고 싶지?

 

그다지
훌륭하지 못한 마녀들은

 

그렇게 자기 망상에
사로잡혀서 자멸해갔어

 

마이, 부디 알아주렴

 

이건 아주 중요한 거야

 

할머니가 마이를
꾸짖는 게 아니란다

 

마이가 맞을지도 몰라
아닐지도 모르고

 

중요한 건
지금 마이의 마음이

 

의혹과 증오로
가득 찼다는 거야

 

난 진상을 알아야 비로소

 

이 의혹과 증오가
없어질 거라고 생각해

 

과연 그럴까

 

나는 다시
새로운 원한과 미움이

 

생겨날 뿐이라고 생각해

 

그런 에너지의 작동은

 

사람을 몹시
지치게 하지 않을까?

 

그럴 거 같아

 

잠깐 들어갈게

 

갓 구운 거야

 

먹자

 

벌써 이 닦았어

 

나도 닦았어

 

따뜻하다

 

한밤중에 갑자기
과자를 굽고 싶을 때가 있어

 

할머니가?

 

그래

 

난 틀렸나 봐

 

뭐가?

 

그게...

 

그렇지 않아

 

넌 아주 잘하고 있어

 

초조해하면 안 돼

 

시간이 걸리는 일도 있어

 

할머니

 

나 있잖아

 

저기...

 

표현은 잘 못하겠는데

 

여기가 좋아

 

정말이야

 

계속 쭉 여기 있어도 돼

 

마이가 그러고 싶다면
내가 엄마한테 얘기해줄게

 

엄마한테
갑자기 전화가 왔다

 

아빠가 3일 후에 온단다

 

안녕

 

좋아 보이네

 

아빠 회사 안 갔어?

 

마침 잘 됐지
마이 덕에 쉴 수 있어서

 

마이

 

지난번에는 감사했어요

 

됐어, 됐어

 

이거 할머니한테 드려

 

아빠예요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글렀어

 

켄타로, 우리 아들 말이야

 

녀석이 이제
우체부가 되기 싫대

 

되고 싶은 게
따로 생겼다네

 

뭔줄 아니?

 

축구 선수라는데
어떻게 생각해?

 

자기 의지는 굳건하대

 

바보 같지, 글렀어

 

가봐야겠다
할머니한테 인사 전해줘

 

갑니다

 

가세요

 

즐거워 보이네

 

 

할머니, 이거

 

어서 와, 피곤하지?

 

마이가 신세가 많습니다

 

마이 덕분에
날마다 즐거운걸

 

나는 계속
있어주길 바랄 정도야

 

그렇군요

 

아빠

 

아, 이거

 

이거요

 

어머나, 고마워

 

아닙니다

 

마이

 

엄마랑도 얘기했는데

 

이제 슬슬

 

셋이 같이
키다시에서 살까 하는데

 

어때?

 

그럼 마이 엄마는
일을 그만두는 거야?

 

네, 애 엄마가
그래도 괜찮대요

 

학교는?

 

전학 가야겠지

 

지금 당장 결정해야 해?

 

그렇지

 

아빠가 내일 가니까

 

그때까지
네 생각을 들려줄래?

 

알았어

 

좋아, 모처럼
차를 갖고 왔으니까

 

드라이브 좀 할까

 

그래

 

저희 잠깐 다녀올게요

 

키다시로 가면

 

할머니 집에
별로 못 오겠네

 

그렇지

 

여기까지
반나절은 걸리니까

 

엄마도 이 정도는
만들 줄 알면 좋겠다

 

그날 밤 할머니는

 

아빠가 좋아하는
키쉬를 구워줬다

 

진짜?

 

그래

 

아빠는 할아버지가
너무 좋았어

 

할아버지는
아빠를 만날 때마다

 

돌에 대해
많이 알려주셨지

 

진짜 아들처럼

 

아빠는

 

할아버지가 좋았어

 

놀랍다

 

이런 것도 할 줄 알다니

 

아, 미안

 

자, 됐다

 

그럼 잘 자

 

그래, 고마워

 

잘 자

 

- 잘 자
- 잘 자

 

할머니

 

응?

 

왜 아빠는

 

내가 왜 학교에
안 가는지 안 물어볼까

 

엄마는 물어봤니?

 

아니

 

그러고 보니
할머니도 안 물어봤네

 

모두 마이를
믿으니까 그렇겠지

 

마이가
안 간다고 하는 데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

 

여자들 관계는 독특하잖아

 

학기 초에 정신없이
몇 개의 그룹이 생겨

 

그래서 쉬는 시간에
같이 화장실을 가고

 

좋아하는
아이돌 얘기를 하는데

 

힘들겠다

 

작년까지는
나도 되게 잘했어

 

그런데 왠지 올해는
그런 게 싫어졌어

 

그룹에
들어가는 게?

 

 

같은 그룹이 되고 싶은
애의 얼굴을 보며

 

생글생글 웃고

 

관심도 없는 얘기에

 

열심히 맞장구를 치고

 

그런 게 왠지 모르게

 

싫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알 거 같아

 

그래서 올해는
그런 걸 전혀 안 했거든

 

그랬더니
결국 혼자가 돼버렸어

 

다른 그룹에 들어간 아이는
너랑 이제 친하게 못 지내?

 

안 돼

 

그 애가
나랑 얘기하고 싶어도

 

자기 그룹 애가 부르면
바로 거기로 가야 해

 

그러니까 어느 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가

 

거기서 테스트 되는 거지

 

어렵구나

 

하지만 난
그 애를 원망하지 않아

 

당연하거든

 

그룹끼리 교류는 없니?

 

여러 경우가 있어

 

그런데 이번에 우리 반은

 

드물게 각 그룹이
서로 친해지려고 한 거 같아

 

그런 것도 가능해?

 

응, 간단해

 

다 같이 누구 하나를
적으로 삼으면 되거든

 

그래서 말인데
아빠가 얘기한 전학

 

마녀는 스스로 결정한단다

 

알고 있지?

 

응, 알아

 

그래도 좀 들어줘

 

그래

 

만약 전학을 가서
그 반에서 탈출해도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아

 

그래서 뭔가
마냥 기뻐할 수 없는 거지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견습 마녀에게는
아직 무리야

 

이 경우의 문제는

 

반 아이들 모두가
제각각 불안하다는 거니까

 

하지만 내 문제도
역시 있다고 생각해

 

독불장군으로 버티느냐

 

무리로 살아가는
편함을 택하느냐

 

그때그때 결정하면 어떨까

 

자기가 편하게 살 장소를
추구했다고 해서

 

떳떳하지 못할 거 없어

 

선인장은
물속에서 자랄 필요가 없고

 

북극곰이 하와이보다
북극에서 살기를 택했다고

 

누가 북극곰을 비난하겠어

 

할머니는 항상
스스로 결정하라고 하는데

 

나 왠지 항상 할머니한테

 

묘하게
유도당하는 기분이야

 

이제 그만 자자

 

- 좋은 아침
- 좋은 아침

 

좋은 아침이요

 

좋은 아침

 

아빠

 

응?

 

역시 엄마랑 같이
아빠 있는 데로 갈게

 

그렇구나, 역시

 

아, 그럼
수속 같은 것도 있으니

 

되도록 서둘러야겠다

 

아빠, 나 직접
학교를 견학하고 싶어

 

학교를 내가 고르고 싶어

 

마이...

 

좋아, 아주 좋아

 

- 위험해, 칼 있어
- 아빠가 너무 기쁘다

 

잠깐만

 

아빠, 그만

 

- 기특해라
- 칼 들고 있다니까

 

산딸기잼

 

응, 알았어

 

엄마 편한 날에 와

 

그래, 안녕

 

아빠가 간 다음 날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앞으로 2, 3일 안에

 

집으로 돌아가
이사를 준비하게 됐다

 

키다시로 가면

 

할머니 집에도
이제 자주 못 오게 된다

 

정원에 쓸 흙을 파고 있다

 

그 남자가
내 성역에 침입했어

 

마이, 앉아봐

 

싫어, 앉기 싫어

 

마녀 수업을
잊은 거니, 마이?

 

그렇게 동요하면 어떡해

 

하지만 난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사람이
싫은 마음은 바뀌지 않아

 

참을 수가 없다고

 

겐지 씨가 정원에 쓸
흙을 파고 있다고 했잖아

 

그럼 그거로 된 거잖니

 

그게 정말일 리 없잖아

 

그건 범죄야

 

그런 짓을 계속하게 두면
그 땅을 다 뺏겨버린다고

 

물참나무가 있잖아

 

또 산벚나무랑
이것저것 있고

 

거기 너머까지는 안 와

 

설령 겐지 씨가 진짜
네 말대로 그랬다고 해도

 

그렇지만

 

게다가
겐지 씨한테 너무 실례했어

 

인사도 안 하고 돌아왔지?

 

그런 일을 당하면
몹시 상처받을 거야

 

나는

 

그런 일에 동요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어

 

난 그 사람을
절대 좋아할 수 없어

 

그런 추접한 인간은

 

그냥 죽어버리면 좋겠어!

 

마이!

 

마이...

 

할머니는 나보다
그 남자가 중요하구나

 

배고프지?

 

내려가서 뭐 좀 먹자

 

차 안 마셔?

 

됐어

 

굿나잇, 스위티

 

그런데 할머니도

 

내가 한 말에
동요해서 반응했어

 

마이!

 

마이!

 

마이!

 

마이...

 

마이

 

이렇게 다 젖어서

 

춥지, 어서 가자

 

할아버지는

 

안개를 보면서
따뜻한 홍차를 마시는 걸

 

아주 좋아했어

 

무슨 재미인지 모르겠지만

 

마이가 어렸을 때

 

이렇게 안개 낀 날
미아가 된 적이 있었어

 

그때는 할아버지랑
필사적으로 찾았지

 

그런데 지금은...

 

마이가 커서

 

야무지게 혼자 돌아왔네

 

애 아빠랑 상의한 결과야

 

가족이 흩어지고
내가 일하느라 바쁜 게

 

마이한테도
꽤 부담이었지 싶어서

 

용케 결심했구나

 

나한테 뭐가 제일 중요한가
우선순위를 생각했어

 

생각하지 않으면
모르는 거니?

 

말해두는데

 

난 이번에 아예
일을 관둘 작정은 아니야

 

난 엄마처럼
도저히 살 수 없어

 

나는 내 인생을 살 거고

 

아무리 엄마라도

 

나한테도 마이한테도
자신의 인생을 강요할 순 없어

 

확실히 이제
구식일지도 모르겠네

 

왜 그래, 엄마답지 않게

 

어떤 게 나다운 건데?

 

언제나 신념이
흔들리지 않잖아

 

안정되면 연락할게

 

마이, 어서 타

 

갈게

 

할머니는
말해주길 바랐을 거다

 

그 사건 전처럼
"할머니 너무 좋아" 라고

 

하지만 난 말할 수 없었다

 

2년이 지났다

 

나는 매일
학교를 다니고 있다

 

그 후 할머니 집에는
한 번도 가지 않았다

 

내가 할머니한테
마지막에 한 짓은 너무 심했다

 

그런 작별 방식으로

 

할머니를 혼자
남겨두고 와서는 안 됐다

 

내가 당한 일보다
내가 한 짓이 훨씬 심했다

 

용서받을 수 있을까

 

하지만 분명

 

할머니는
언제나처럼 반겨줄 거다

 

처음에 내가 어색해해도

 

늘 그랬듯이

 

엄마, 그거 알아?

 

할머니는 사실

 

그래

 

할머니는 진짜 마녀야

 

마을 사람한테
알리고 올게요

 

엄마는요?

 

집에서는
이런 거 안 씌운다고

 

마이

 

미안한데

 

잠시만 주방에 가 있어

 

무슨 할 일 있으면
뭐든지 얘기해

 

내가 참 못났는데

 

여기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잘 대해주셨어

 

오이풀이 가득 잘도 피었네

 

그걸 오이풀이라고 해요?

 

그래, 그렇게 부르지

 

서쪽의 마녀가 동쪽의 마녀에게

 

할머니의 영혼

 

탈출 대성공

 

할머니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 약속을

 

할머니

 

너무 좋아!

 

아이 노우
(I know)